신사업 추진의 성공방안

김창현 / 주간경제 762호 2004.01.14

디지털 컨버전스가 산업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신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없이는, 기존 사업의 연속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선점하지 않으면 낯선 경쟁자가 기존 시장을 잠식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컨버전스 시대의 생존 요건인 신사업 추진의 성공 방안을 살펴본다.

게임기 만드는 노키아, TV 만드는 HP, 인터넷에서 음반을 파는 Dell, 영화 제작자 소니 까지... 기업들의 변신이 대단하다. 왜 이들 기업들이 이전과는 성격이 상이한 사업으로의 진입을 선언하게 된 것일까?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기존 사업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하면 기존 명성에 흠집을 낼 수도 있는 생소한 부문에 대한 사업 추진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신사업 추진을 일상적 경영 활동으로

그러나, 막상 이런 결정을 내린 기업들은 결코 이러한 신사업 추진이 기존 사업 방향과 궤를 달리하는 돌연변이적 선택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HP사는 TV 시장 진출을 신사업 개시의 의미보다는 자사의 디지털 전략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의 변화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다. 디지털화라는 큰 흐름에 몸을 싣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 결코, 본업과 관계 없는 사업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노키아의 N-Gage(게임기) 사업이나 소니의 콘텐츠 사업도 무리한 신사업 추진 보다는, 휴대폰의 멀티미디어화와 방송의 양방향화라는 기술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는 분위기다.

이들 기업들의 변화를 보면서 다각화가 좋은 것이냐 집중화가 좋은 것이냐는 문제로 논쟁을 다시 벌이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디지털 컨버전스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 사업과 신사업, 관련 사업과 비관련 사업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신사업 추진의 역량이 기업의 획기적 성장을 위해 추가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역량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사업 추진과 이를 위한 역량 확보가 기존 사업의 유지,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하고 기업의 DNA로 체화 되어야 하는 필수적 역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신사업 추진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기존 시장에 안정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 일수록 신사업 추진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기존 사업을 통해 체득된 성공 경험이 오히려 신사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사업 추진에 있어 실수를 피할 수는 없지만,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라 - 사업 모델의 재검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다. 기존 사업 경험이 신사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으로 작용해 신사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 업체의 게임기 사업 진출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마쯔시타, 산요 등 대표적인 일본 전자 기업들은 게임 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인식하고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제외하면 일본 전자업체의 게임 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마쯔시타와 산요의 3-DO, NEC 가전의 PC-FX 기술, 히타치의 하이-새턴은 모두 일본 전자 기업들이 게임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도전했지만 실패한 제품들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 전자 기업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게임사업에 적용했다는 데에 있다. 전통적으로 전자 메이커들은 비용을 토대로 가격을 산정하고 하드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 사업의 논리는 달랐다. 비용을 토대로 하드웨어 가격을 산정하면 실패하는 것이 게임 사업의 속성이었다. 하드웨어는 무료로 주고서라도 시장을 넓히고, 그 기반위에서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 사업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완전한 성공이라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달랐던 점도 여기에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한지 6달여 만에 399달러에 이르던 하드웨어 가격을 299불로 인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6달 동안에 폭발적인 매출 성장으로 고정비를 회수 했기 때문에 가격 인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상황은 오히려 반대였다. 400불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고 하드웨어를 살 수 있는 매니아 층의 소비가 소진되고 나자 플레이 스테이션의 판매는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가 출시되었지만 그것이 판매를 촉진시킬 수는 없었다. 이때, 구타라기 겐을 비롯한 소니의 이단아들은 전격적인 가격 인하 결정을 내렸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소니의 본사였다. 현재 적자인 사업에서 가격을 또 인하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시뮬레이션이나 돌려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냐는 성토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판매 중인 모델을 제품 변경 없이 가격을 내리는 것은 소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구타라기를 비롯한 신사업 추진 주체의 의지는 확고했다. 플레이 스테이션을 밑지고 파는 것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주저하다 시장을 놓치면 더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고 사업의 미래가 송두리째 날라간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존 모델과 성능을 달리하여 저가 모델을 내고 가격을 인하하는 데서 합의점을 찾았고 플레이 스테이션은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하드웨어의 가격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수익 모델의 관점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결정하는 인프라 구축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 이었던 것이다.


차별화 - 게임룰을 바꿔라

그러나, 신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고 이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기존 경쟁 업체와 차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후발 사업자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게임룰을 바꾸어야만 한다.

사실, 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과 게임룰을 바꾸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명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소실되고, 적응하는데 급급해 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업과 고객에 대한 이해 없는 성급한 차별화는 가치가 없는 차별화, 비용만을 증가시키는 차별화로 전락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과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고민 속에서 변화가 시도되어야만 고객이 가치를 느끼는 차별화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 휴대폰의 성공은 게임룰을 바꾸어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대표적인 예이자 한국 기업에게 훌륭한 성공 체험이다.

한국 휴대폰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국내에서는 튼튼한 사업 기반을 가지고 있는 종합 가전 기업이었다. 그러나, 휴대폰 부문에서는 경험이 일천한 신참자였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시장은 휴대폰 부문에서 세계 최강자 중의 하나인 모토로라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세계 시장은 뛰어난 연구개발력과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에릭슨, 노키아, 모토로라와 같은 정보통신 전문 업체들이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이 약하고 원천 기술 부문에서 역량이 떨어지는 한국 기업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통신 서비스 사업자 전용 단말기였다. 노키아나 모토로라와 같은 대형 휴대폰 업체들이 자신들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개별 통신 서비스 사업자의 니즈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활용한 차별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B2C 마켓 성격이 강했던 휴대폰 시장의 게임룰을 대형 기업 고객에 대한 밀착 서비스와 빠른 제품 개발력이 중요한 B2B 마켓의 그것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카드였다. 이는 이미 반도체나 LCD와 같은 핵심 부품 사업에서 한국 전자 기업이 성공 체험을 확보했던 경쟁과 유사하게 게임룰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정보통신 부문에서 소비자 인지도가 낮았던 한국 휴대폰 기업들이 세계적인 통신 서비스 사업자와의 공동 마케팅으로 세계 시장에서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일반 소비자에게 까지 인정 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높은 로열티를 물고, 통신 사업자별로 별도의 단말기를 개발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어떻게 수익성을 확보하느냐였다. 즉, 대형 사업자들을 위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Mass customi-zation)의 경제성을 담보하는 수익 모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서 한국 기업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진전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으로 저가로 시장에 진입해 대량 생산으로 코스트 구조를 차별화해 수익을 내던 기존 방식과 확실히 다른 접근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대형화로 저 비용 구조를 만들기 보다는 한발 앞선 제품 출시로 평균 판매가격(ASP)을 높임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수익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Set 기기에서 일본 기업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제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Critical Mass를 확보하라 - 가능성 있는 변방을 노려라

하지만, 신사업 추진에 있어 이러한 전략을 펼치기 전에 가장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고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고객 확보는 경쟁력 확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쟁력 확보의 전제가 되기도 한다. 고객이 확보되지 않으면 부품 업체나 장비 업체 누구도 확실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선행 기술이 적용된 부품을 경쟁 업체보다 먼저 제시해 줄 가능성도 없다.

그런 상황에선, 차별화 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핵심 부품 업체나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모두 자기들의 고객을 평가하는 냉정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의 핵심은 고객의 고객 구조이다. 사업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객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늦게 뛰어든 후발 업체들이 어떻게 단기간에 최소 규모 이상의 고객 구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디서부터 고객 개척을 시작해야 할까?

몸집이 크고 단번에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대형 고객을 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집이 큰 고객들에게는 이미 강력한 경쟁자들이 한발 앞선 제품과 서비스로 강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흥 업체가 대형 고객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차별화 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 고객이 기술과 제품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간은 통상 몇 년씩 걸려 사업 초기 임계 물량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오히려 대형 업체가 간과하고 있는 변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디지털 셋탑 박스를 판매하고 있는 휴맥스는 방송사와의 오랜 파트너십을 통해 노키아나 필립스와 같은 대형 현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방송사 유통 셋탑 박스 시장 대신 시장 규모가 훨씬 작은 소비자 유통 시장을 휴맥스의 브랜드로 적극 공략했다. 시장 규모가 소규모 여서 경쟁자들의 견제가 약해 초기 시장 확보가 용이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비자 유통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예전에는 만나주지도 않았던 대형 방송사들이 찾아와서 사업 상담을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변방의 시장을 공략할 때 유의할 점은 규모는 작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앞서나가는 고객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변방은 본격적인 전투를 펼쳐나가기 위한 훈련 무대 이다. 변방에서의 경험을 통해 중앙에서의 전투를 치룰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제품 평가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까다로운 고객을 선택해 충분한 훈련 기간을 쌓는 것이 신사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업계에서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한국 휴대폰도 시장 규모가 소규모인 CDMA 서비스에 집중함으로써 노키아와 같은 대형 업체의 견제를 덜 받으면서 사업기반 확보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동시에, CDMA 표준을 따르는 한국 이동 통신 시장의 빠른 제품 개발 주기와 첨단 기술 흡수 속도 덕분에 폴더폰 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고안해 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너지 - 전제가 아닌 결과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특히 대기업이 빠지기 쉬운 함정중의 하나가 초기부터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전제로 사업을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유통망을 활용하거나, 기존 기술 기반 위에서 새로운 기술을 덧붙이는 형태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너지 활용방안이 자칫하면 오히려 소비자를 실망시키고 기존 사업과 신사업간의 브랜드 이미지 충돌 등으로 사업 실패로 이어지는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 기업인 하이얼과 TCL은 신사업이라 할 수 있는 휴대폰 사업 유통망 구축에 있어 다른 접근 방법을 선택했다. 하이얼은 신사업을 빨리 안정화 시키기 위해 기존 가전 유통망 위에 휴대폰을 추가하는 방식의 유통 전략을 펼쳤다. 하이얼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TCL의 방향은 달랐다. 휴대폰은 패션 상품이고 첨단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가전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 사업초기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기존 가전망에 휴대폰을 얹을 경우 최종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아직은 물량이 작은 휴대폰 판매에 주력하기 보다는 덩치가 큰 가전 제품 판매에 주력하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신사업 안정화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아직까지, 중국 로컬 휴대폰 업체들의 최종 성과를 판단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TCL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최종 판매원에 대한 파격적 인센티브와 소비자에 대한 적극적인 추천, 시장으로부터의 빠른 정보 입수 등에 힘입어 TCL이 로컬 업체 중에서는 1,2위의 지위를 다툴 정도로 확실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이얼은 아직 중국 로컬 업체 중에서도 7~8위권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 전자업체의 게임기 진출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가 그대로 보여진다. 1994년 일본 전자 업체의 게임기가 출시될 무렵 전자 업계의 관심사는 멀티미디어 였다. 차세대 게임기는 늘 그 중심에 있었다. 게임기가 멀티미디어로 가는 관문으로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 전자 업체는 공공연히 자신들의 제품을 ‘멀티미디어 기계’로 선전했다. 마쯔시타는 3-DO 게임기를 공공연히 멀티미디어 기계라고 소개했다. NEC도 PC/FX의 장기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 멀티미디어 PC 라는 점을 강조했다. 분명히, 게임기는 고성능의 컴퓨터이다.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 때문에 멀티미디어 기계로도 팔 수 있다는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 기계들은 게임기로서 자리를 잡는데 실패했다. 문제는, 이들 업체들이 게임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게임 매니아 들의 욕구를 잘못 파악 했다는 데에 있다. 새로운 하드웨어를 구입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시험해 보고 이를 평가하는 매니아 들이 원하는 것은 멀티미디어가 가능한 게임기가 아니라 최고의 게임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반면, 소니의 접근 전략은 달랐다. 소니는 플레이 스테이션이 오직 게임기임을 강조하면서 소비자와 관련 업계의 신뢰를 얻으려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게임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게임기를 제공하면 팔릴 수 있다는 게 소니의 전략이었다. 소니가 게임 사업 추진 주체를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하였고, 게임 부문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물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진화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에는 막강한 하드드라이브가 장착될 것이고, 영화와 음악을 저장하고 이를 시현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3를 엔터테인먼트의 센터가 되게 한다는 것이 가전 왕국 소니의 복안임에는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신사업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신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이상 신사업 자체가 사업의 중심이며 거기서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이다. 시너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개별 사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상황 속에서 추가적인 고객밀착과 진입장벽의 수단은 될 수 있으나, 결코 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프론티어’정신을 되찾아라

사실, 한국 기업만큼 신사업 추진에 의욕적이고 그 성공률이 높은 기업도 드물다. 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성공시키고야 마는 한국 기업의 ‘프론티어’정신이야 말로 한국 기업이 가진 장점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빠른 기술 변화와 함께 그 파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전에 비해 다음 세대의 주력 상품에 대한 그림이 쉽게 잡히지 않게 되고, 한국 기업도 대형화 조직화 되면서 이전 같은 도전적 신사업 추진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또한, 자본 시장의 세계화로 섣부른 신사업 추진이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컨버전스의 가속화로 지속적인 신사업 추진 없이 기업의 연속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전처럼 누군가 해 놓은 것을 모방 하는 것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시장을 읽어내고 사업기회를 찾아내는 감각과 이를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는 ‘프론티어’정신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사업모델을 재구축하고, 현상을 넘어서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도전적 인재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제공하고 전체 차원에서 이를 관리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준비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by 100명 2005. 3. 14.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