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필립스 본사.

사명에서 '전자' 간판 떼

한때 소니와 TV 양분… 삼성·LG에 밀려 쇠락

의료기기·조명·면도기 등 새 분야에 집중하기로

120년 역사의 유럽 '전자명가'인 필립스가 사명에서 전자를 떼어낸다. 한때 소니와 더불어 세계 TV시장을 양분했고, 특히 유럽시장에선 절대강자의 지위를 누렸던 필립스이지만 삼성전자 LG전자에 밀려 전자산업에선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보고, 아예 사명까지 바꾸게 된 것이다.

필립스는 TV 오디오 사업 등을 정리하고 헬스케어(의료기기)와 조명업체로 변신을 모색중이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델란드에 본사를 둔 필립스는 5월3일(현지 시간) 주주총회를 갖고 122년 만에 전자업체 간판을 내린다. 이에 따라 사명이 기존 로열필립스전자(Royal Philips Electronics)에서 전자를 떼어낸 로열필립스로 바뀐다. ㈜필립스전자로 등록된 국내 법인도 여기 맞춰 사명 변경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네델란드 본사에서 주주총회 직후 사명 변경을 발표할 것"이라며 "해외 지사들도 사명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스의 사명 변경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입헌군주국인 네델란드에서 사명에 '로열'호칭을 부여할 정도로 필립스는 이 나라의 국민기업이다. 1891년 아인트호벤에서 백열전구를 유럽 최초로 상용화하며 출발한 필립스는 전기면도기, 라디오, TV, 오디오, 반도체, 음반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30년대엔 세계 최대 라디오 생산업체였고, 1983년에는 세계 최초로 컴팩트디스크(CD)를 개발했으며 1997년 소니와 함께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도 개발했다. 특히 TV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소니와 함께 주요 매장의 가장 앞 자리를 차지할 만큼 브랜드파워나 품질에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전자업체로서 필립스의 영광은 거기까지다. 이후 삼성전자 LG전자가 평면TV에 일찌감치 투자해 세계 1,2위로 부상하면서 필립스는 위기를 맞았다. 필립스는 2001년 약 25억 유로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회사의 심장'으로 꼽히던 반도체와 전자를 차례로 정리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TV와 오디오사업부문도 사라졌다. TV사업은 중국계 TP비전, 오디오와 비디오기기 사업은 일본 후나이에 매각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TV와 오디오는 모두 이들 업체 제품에 필립스 브랜드만 붙여서 공동 판매한다.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사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필립스는 ▲의료기기 ▲친환경 조명 ▲면도기나 전동칫솔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형가전 등 3대 분야로 사업구조를 개편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의 마지막 작업이 이번 사명 변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니와 함께 세계전자시장을 지배했던 필립스이지만 삼성전자 LG전자에 밀리고 중국업체에까지 추격당하면서 역시 소니처럼 TV까지 접게 됐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4. 30. 0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