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코드로 풀어본 6·10 촛불집회 - 전문가 진단
억눌린 잠재의식 분출하는 한국판 `카오스모스`
中ㆍ日과 다른 유목민적 자유분방함 표출

6ㆍ10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태평로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뉴시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시위와 놀이가 공존하고,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집회를 보이고 있다.

시위를 전면에서 주도하는 세력이 없고, 비폭력을 외치면서도 내각 사퇴를 불어올 만큼 강력하게 주장을 전달하고, 사고 없이 밤샘 시위가 마무리되는 것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한편에선 '2002년 월드컵 열기'를, 또 다른 쪽에선 '19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겐 어떤 DNA가 내재돼 있기에 이런 독특한 시위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일까.

많은 역사ㆍ문화학자들은 디지털 인터넷 등 거미줄 네트워크가 물리적인 측면에서 이번 시위를 주도했지만 한국인에겐 이미 촛불시위와 유사한 형태의 문화적 요소가 역사 속에 잠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 즐기는 시위문화 DNA 잠재돼 있어

= 최민성 한신대 교수는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현상을 '굿판'에 비유했다.

최 교수는 "굿이란 권력과 권위로 인해 내면에 숨겨진 억압된 이야기를 털어놓고 모두 용서하고 화합하는 과정"이라며 "예로부터 한국인은 이런 난장의 질서, 즉 감성과 이성이 어우러지고 질서와 무질서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방식을 사랑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카오스 모스(카오스ㆍ혼돈+코스모스ㆍ질서)'라고 정의했다.

최 교수는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리 민족은 중대한 국면에선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적인 틀보다 촛불집회와 같은 직접적인 대화와 소통을 원해 왔다"고 강조했다.

함한희 전북대 교수는 "우리는 이전부터 여론을 조성하려면 마을이든 어디든 모여 여론을 만들고 조성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며 "조선시대 이래 집회문화에서 꾸준히 보여온 것으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촛불집회는 시위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탈춤을 추며 양반을 비판하고 즉석 연단을 만들어 의견을 표출했다"며 "누가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어제 촛불집회에선 전통적인 것을 찾아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명기 경북대 교수는 "비교문화적으로 보면 우리 마을공동체에는 일터 바로 옆에 쉼터가 붙어 있었다"며 "우리는 어울림의 성향이 강했고, 거기에서 생활의 에너지를 찾곤 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한쪽에서는 심각한 주제로 시위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흥겹게 놀고 김밥을 먹는 독특한 패턴을 보이는 건 이런 성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적어도 이런 문화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다"며 "북방 기마민족의 DNA를 깊숙이 간직한 한국인만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성장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유목민적 자유분방함과 열정을 보여주는 민족"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를 아시아의 라틴계라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 가급적 직접 표현은 자제하고, 국회 통해 의견 표출해야

= 함 교수는 "외국에선 이 정도가 모이면 사고 나기 십상인데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렇고, 그때와는 달리 시위였던 이번 집회에도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며 "우리는 이전부터 민의의식이 발달했는데 거기에 민주화를 거치면서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세련됐다"고 말했다.

윤상우 한림대 교수는 "1987년 6월 민주화가 가능했던 것은 비폭력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경찰이 강제 진압하면 아예 바닥에 앉거나 드러누웠다"며 "공권력에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정당성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의 근원은 1987년 항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서구의 시위는 우리 생각처럼 과격하고 전투적이지 않다.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했고, 오히려 집회를 이벤트하는 식으로 집단의 의사를 전달해 왔다"며 "우리는 19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런 서구의 시위를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사회운동이 정상화 단계에 왔다고 볼 수 있다. 절박하고 처절한 시위가 일상에서 즐기는 시위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번 집회에선 사회적으로 큰 문제 제기를 10대가 시작했다"며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사람은 민주화와 자율성이 내면화됐다"며 "특히 젊은 세대는 정치적인 억압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전혀 무서움이 없다"고 말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함 교수는 "우리 역사 속에서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의견을 표출해온 것은 의견을 표출할 간접 민주주의의 통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며 "국회라는 대의 민주주의가 있는 만큼 직접 민주주의적 표현은 자제하고, 국회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광장에 모일 수는 없지만 가상의 공간인 인터넷을 통해 대의 민주주의라는 큰 줄기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은 찾아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광장의 의견을 정책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8. 6. 12.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