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지안(集安: 서기 3~427년 고구려 首都) '고구려 박물관'의 역사 왜곡… 고구려史 뭉개고 발해史는 지워

[지안박물관,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어제 재개관]

-동북공정 강화

"漢 무제가 현토군에 고구려현 설치, 中原에 융합" 옌볜 지역은 말갈족 영역으로

-모순 노출

지도에 남쪽 경계는 한강 유역, 옌볜은 고구려땅 아니라면서 고구려城 그려 넣기도

-集安 고구려碑

8각 유리상자 안에 넣어놓고 1m 떨어져서만 볼 수 있게… 확대경 써도 碑文 판독 어려워

지린성 지안·창바이안용현 특파원


"고구려가 조선족(한민족)의 조상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중국의 나라였네요."

1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지안 박물관'. 이날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신축 재개관한 박물관 6개 전시실을 관람한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개관 당일 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본 결과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같은 노골적 표현은 없었다. 그러나 동행한 국내 전문가는 "'동북공정'이 무서운 건 고구려사(史)를 자연스럽게 중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지안 박물관을 통해 더 교묘하고 세밀하게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안은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곳이다.

안내원 "고구려족은 中 소수민족"

(위 사진부터 반시계방향) 내부 사진촬영도 기록도 금지한 지안박물관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인민정부청사 앞에 세워진 지안박물관 입구. 1일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신축 재개관했으며,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박물관 측은 내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전시물 내용을 기록하는 것까지 엄격하게 통제했다. /지안시 청사 앞에 고구려 상징 '三足烏' 동상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인민정부청사 앞에 1일 고구려를 상징하는‘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동상이 서 있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발해 벽돌탑인 '영광탑' 안내판엔 "당나라 風格을 갖고 있다" - 탑 안내판에“모양과 구조는 당나라 때의 현장탑과 비슷하며 당나라의 풍격을 갖고 있다”고 적혀 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長白)에 있는 발해 시기 벽돌탑인 영광탑(靈光塔). /지안·창바이=안용현 특파원

지안시 인민정부 청사 앞에는 고구려 상징인 '삼족오(三足烏·태양에 산다는 세 발 까마귀)' 동상이 서 있다. 안내판엔 "태양조(太陽鳥·삼족오)는 중국 고대 전설에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의 삼족오는 고구려 민족과 중원(中原·중국을 지칭) 민족이 동일하게 태양조를 숭배했다는 의미"라고 적혀 있다. 한 시민은 "2년 전까지는 '고구려족(族)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며 "한국과 북한의 반대가 심해 이를 삭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일, 한·일 간 역사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경 쓴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박물관 안에 있는 안내판과 지도에는 고구려가 한(漢)·당(唐)의 영향을 받아 중원에 '융합'됐다는 내용만 가득했다. 한 관람객이 "고구려와 조선(한반도)의 관계는 뭐냐"고 물었다. 전시관 안내원은 "고구려와 한반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구려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답했다.

고구려와 발해 연결 고리 제거

고구려 영역도에는 지금의 옌볜(延邊) 일대를 고구려 영토에서 제외하고 해당 지역을 말갈족 영역으로 구분했다. 국내 전문가는 "고구려에서 말갈을 뺀 것은 고구려와 발해가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없애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발해는 고구려 지배층과 말갈 피지배층으로 이뤄진 국가였다. 고구려에서 말갈이 없어지면 고구려와 발해의 연관성도 그만큼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린성 창바이(長白)에 있는 발해 벽돌탑인 '영광탑'의 안내판에는 "당나라 발해 시기에 쌓았다. 모양과 구조가 시안(西安)의 당나라 때 현장탑과 비슷하다"고 써놨다. 그러나 박물관의 고구려 산성(山城) 지도에선 옌볜 지역에 고구려 산성이 두 곳 있는 것으로 표시했다. 옌볜 일대가 고구려 땅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고구려성을 그려 넣은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 고구려 영토의 남쪽 경계는 한강 유역이라고 했지만 지도상 압록강 이남에는 어떤 유적도 표시하지 않았다.

박물관 전시는 일관되게 중원과 고구려의 '결합'을 강조했다. 입구에서부터 "한 무제가 현토군에 고구려현을 설치했다"고 적었다. 관련 지도는 현토군이 고구려로 성장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현토군을 밀어내면서 성장한 국가라는 게 전공 학자 대부분의 일치된 견해다. 안내판처럼 '고구려족과 중원 각 민족의 융합'을 통해 성장하지 않았다. 수(隋)·당과 대전(大戰)을 벌여 이들을 물리친 사실은 박물관에 어떤 설명도 없었다.

박물관은 또 "고구려 왕과 귀족은 당나라 관리 복장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는 "고구려는 망할 때까지 독자적 관등 체계를 유지했다"면서 "이곳 박물관에도 소형(小兄)·대형(大兄) 등 고구려의 독특한 관직이 적힌 기와 조각이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현존 최고(最古) 고구려 비석으로 추정되는 '지안 고구려비'는 박물관 1층 로비 가운데 있었다. 8각 유리 상자에 넣어 성인 허리 높이의 전시대에 올려놓았다. 1m 밖에서 관람하게 돼 있어 비문(碑文)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석 실물을 처음 접한 국내 학자들이 확대경까지 동원해 글자를 판독하려고 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지안(集安) 박물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에 지어진 고구려 박물관. 중국은 2003년 이른바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시기에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3년 전 완공됐으나 내부 보완을 거쳐 1일 재개관했다.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이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추진한 동북 지역 연구 프로젝트.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2002년부터 5년간 진행했다. 지금은 ‘역사 왜곡’ 영역을 벗어나 일반 중국인의 상식을 바꾸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한반도 통일 등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중국의 역사적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있다.
by 100명 2013. 5. 2. 0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