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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현금배당을 받는 방법, 해외부동산에서 찾았습니다.’

‘당신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최대 10년 동안 월급처럼 생활비를 지급합니다.’

월급쟁이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특히 정년을 눈앞에 둔 직장인이라면…. 지난해 월지급식 펀드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주요 증권사들이 내세웠던 광고 카피의 한 대목들이다. 한 운용사는 ‘월급처럼 받으세요’라는 직설적인 문구로 이 대열에 동참했고, 또 한 금융투자회사는 ‘달마다 월급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어디선가 본 듯한 카피로 고객들의 관심을 사려고 했다.

정부는 이 대목에서 진짜 한탕 크게 해먹었다.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 매달 500만원씩 20년 동안!’이란 과격한 광고 카피를 내세워 새로 출시한 연금복권을 대박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이에 뒤질세라 한 출판사는 이를 패러디한 듯 ‘내 월급은 정년이 없다’는 제목의 책을 내 역시 바람을 탔다.

지금 금융계에선 ‘월지급식’이 화두가 되고 있다. 월지급식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트렌드이자 유행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투자자이자 경제칼럼니스트인 다치바나 아키라는 <겁쟁이를 위한 주식투자>에서 월지급식 펀드를 이렇게 묘사했다.

‘월지급식 펀드는 금융업계의 파격적인 히트 상품이다. 이 상품이 내세우는 점은 연금 대신 매달 분배금을 지급한다는 점이다. 상품 구조를 살펴보면 이 펀드가 얼마나 훌륭한 상품인지 알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올해도 이어지는 월지급식 바람

글로벌 금융위기로 잔뜩 위축된 투자시장에 한 가닥 희망처럼 나타난 월지급식 펀드를 겨냥한 금융회사들의 구애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초 100세 시대를 맞아 7종의 연금펀드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이번에 출시한 상품은 우리자산운용을 비롯해 한국투자·하나UBS·삼성·한국밸류·피델리티·JP모간 등 자산운용사의 펀드다. 이들 펀드는 또 각각 1개에서 5개까지 자(子)펀드를 가지고 있어 고객들은 실제 26개 펀드 중에서 자유롭게 연금펀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은행 측은 밝혔다.

신한은행은 고령화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 은퇴 준비를 도우려고 최근 ‘펀드 월지급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거치식 펀드에 가입한 고객에게 사전에 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매월 1회) 지급해 매월 일정액을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발 빠른 증권사들은 연금펀드나 월지급식 펀드를 넘어 월지급식 파생상품으로 나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6월 12일 연 11.52%의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포함한 파생결합증권 10종을 800억원 규모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신한금융투자는 이보다 닷새 앞선 6월 8일 매월 수익지급 평가일에 각 기초자산의 종가가 모두 최초 기준가의 60% 이상이면 매달 원금의 0.85%(연 10.20%)를 지급하는 것을 비롯해 7종의 ELS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동부증권은 지난 6월 5일부터 8일까지 월지급식 스텝다운형 ‘동부 happy+ 파생결합증권(ELS) 제845회’ 등 ELS 3종을 판매했고, HMC투자증권은 7일부터 8일까지 매월 수익지급 평가일에 기초자산 종가가 최초 가격의 60% 이상이면 원금의 0.85%를 지급하는 ELS 등을 판매했다.

기존 펀드를 대상으로 월지급 서비스에 나서는 곳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0년 8월 다양한 펀드를 대상으로 고객의 투자주기에 맞춰 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월지급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월지급식 펀드가 아니라도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투자자의 선택 폭이 큰 게 특징이다.

동양증권도 지난 5월 ‘월지급 솔루션’을 내놨다.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인 이 상품은 투자 유형에 따라 ‘채권 플랜(Plan)’ ‘방카슈랑스 플랜’ ‘신탁 플랜’ ‘랩(Wrap) 플랜’ ‘주가연계증권(ELS) 플랜’ ‘펀드 플랜’ 등 6가지 상품으로 자신의 성향에 따라 월지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월지급식 금융상품은 연금펀드부터 월지급식 ELS와 월지급식 DLS(파생결합증권), 월지급식 랩, 월지급식 즉시연금보험, 월지급식 주택연금, 월지급식 부동산투자신탁 등은 물론이고 월지급 솔루션, 월지급 서비스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선 월지급식 펀드와 월지급식 ELS나 DLS의 판매가 급격히 늘어난 게 특색이다. 월지급식 펀드의 경우 2009년 1개에 불과했던 것이 2010년 8개로 늘었으나 2011년부터 설정 러시를 이루면서 최근엔 90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닝스타코리아에 따르면 이 가운데 중도에 상환됐거나 운용이 정지된 것, 설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익률 집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 등을 제외하고도 정상적으로 운용되는 월지급식 펀드만 5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지급식 ELS나 DLS는 짧은 기간 동안 판매를 마치기 때문에 정확히 집계되지 않으나 거의 매주 새 상품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보험사의 최신 월지급식 상품인 즉시연금도 호황을 맞았다. 부동산 임대사업자였던 박 모씨(65)는 최근 대형 생명보험사에 20억원 상당의 즉시연금을 들었다. 박씨는 사망할 때까지 매월 700만원 상당의 연금을 받기로 했다. 박씨 같은 이들이 몰려들면서 즉시연금 신규납입액은 지난해 2분기 4737억원에서 4분기엔 5596억원으로 늘었다.

불안을 자극하는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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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월지급식 금융상품은 무엇이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람을 타고 있는 것일까. 이들 상품에는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까.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은 “월지급식 상품이 유행하게 된 발단은 낮은 국내 금리와 고령화다”면서 “4~5년 후 본격 은퇴가 늘어나면 월지급식이 더욱 많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투자회사들은 ‘평생 받는 월급에 투자하십시오’라거나 ‘월지급식 펀드로 노후생활비 걱정 뚝~’ 하는 등의 매혹적인 얘기로 고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이들 상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가입한 고객에게 매달 월급을 주듯 꼬박꼬박 일정한 돈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월지급식은 금융기관 입장에서 더 매력적인 상품이다. 적어도 10년, 길게는 고객의 남은 생애에 걸쳐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 자산운용사는 은퇴를 앞둔 이들의 심리를 이렇게 자극하고 있다.

‘영광스런 정년퇴직을 했다. 모두들 수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와이프가 째려본다. 아, 내일부터 월급이 안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에서 밀려날 때가 되어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에게 비수로 찌르는 것 같은 광고다. 이를 보면 누구든 월급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른 증권사는 여기에다 오래 사는 위험까지 추가한다.

‘진짜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지.’

이런 광고를 본 사람, 특히 노후자금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한 직장인들은 숨이 턱 막힐 정도다. 당장 꼬박꼬박 월수입을 얻을 계획을 세워야만 할 것 같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해 불쌍한 직장인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게 퇴직금 연금화 시도다. 정부는 지난 2005년 퇴직연금을 도입한 데 이어 퇴직연금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기업이 망하더라도 근로자가 퇴직금을 떼이지 않게 보장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퇴직금을 일시적으로 받지 못하게 하고 매달 월급처럼 받아가도록 세제개편을 추진하겠단다. 이 무슨 꿍꿍이인가. 근로자가 평생 일해 단 한 번 만져보는 목돈마저 푼돈으로 나눠가라니.

국민연금은 더 무섭다. 국민연금이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는 재무설계 프로그램은 노후자금 계획을 조회한 사람들에게 웬만한 월급쟁이라면 노후자금이 3억~4억원은 부족하다는 진단을 한다. 이제 막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근로자들은 눈앞이 막막할 정도다.

이 프로그램은 퇴직 후 일용직이라도 한다거나 나이가 들어 지출을 줄이는 가정을 배제하고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라도 노후자금을 마련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으론 턱없이 부족하니 퇴직금을 꼭 연금으로 바꿔 월급 받듯이 살아가라는 태도다. 가뜩이나 복지예산 부족으로 고심하는 정부로선 궁여지책으로 이런 방안을 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결과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무조건 달려가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최근 돈 많은 사람들은 즉시연금으로 몰리고 있고 없는 사람들은 사행성 연금복권을 사거나 아니면 아예 두 손을 드는 것 같다. 금융기관들의 엄청난 마케팅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투자자들이 월지급식 펀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더딘 한국 vs 준비 끝낸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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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하반기부터 각 금융기관은 엄청난 물량을 쏟아대며 홍보를 해왔지만 월지급식 펀드 판매는 아직 미미하다. 금융투자협회는 월지급식 펀드 판매사가 80사가 넘을 뿐 아니라 설정도 제각각이라 집계가 어렵다지만 지지부진한 실적을 감추려는 변명처럼 여겨진다.

실제 펀드 업계에서 집계한 결과로는 지난 6월 중순 기준 월지급식 펀드 설정액은 8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같은 시기 주식형 펀드 잔고만도 98조원이 넘고 혼합형 펀드에 포함된 주식 비중을 감안하면 주식펀드 설정액이 100조원을 훨씬 넘으니 초기 월지급식 펀드 판매는 ‘참패’ 수준이 아닐까.

이는 펀드의 대세가 월지급식인 일본과 비교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모닝스타재팬에 따르면 일본의 매월분배형(월지급식의 일본식 표현) 펀드는 지난 2011년 말 기준 전체 43조9000억엔의 주식형 펀드 가운데 33조2000억엔으로 76%에 달한다.

미국에서도 이미 여러 운용사가 월지급식 펀드를 판매하고 있고 기존 펀드에 대해서도 속속 월지급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에도 월지급식 펀드 바람이 불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질 못하다.

월지급식 펀드 Brief

20~30대를 겨냥한 적립식 펀드가 ‘목돈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50대 이상을 겨냥한 월지급식 펀드는 ‘인출’ 또는 ‘환매’에 초점을 맞췄다. 운용보다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서비스’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운용은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

제로금리 국가인 일본의 경우 월지급식 펀드 대부분이 해외채권 투자로 출발했다. 국내에서도 표면금리가 높은 브라질 국채 등이 월지급식 펀드의 초기 투자대상이었다. 브라질 국채를 기준으로 한 월지급식 펀드는 이자율이 높고 비과세 혜택을 받는 장점이 있어 초기엔 인기가 높았다. 다만 브라질 통화로 투자하는 과정에서 환율 리스크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헤알화가 약세로 돌아서고 원화가 강세라면 손실이 커진다. 실제 이 상황이 발생해 월지급식 펀드 정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최근엔 월지급식 ELS나 DLS도 나온다. 정영훈 이트레이드증권 온라인PB센터 차장은 “조기상환이나 만기 때 수익을 주는 일반 ELS나 DLS에 비해 수익률은 다소 낮다”고 말했다.

월지급식 펀드의 지급방식에는 ‘부분환매’ ‘월배당’ ‘월결산’ 등이 있다.

국내에 판매되는 펀드는 대부분 투자원본의 몇 프로(대개 월 0.5%)를 지급하는 부분환매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 줄어든 원금을 회복하는 어려움이 있어 이후 ‘월배당방식’을 채택한 펀드도 나왔다. 얼라이언스번스틴의 상품이 대표적이다. 

by 100명 2013. 5. 6.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