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 대비 엔 환율이 100엔을 넘어서면서 일본 투자자들과 수출 기업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거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염가 잡화점인 '100엔숍'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각) "일본의 100엔숍들이 엔화 가치 약세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는 엔화 가치가 높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들여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같은 물건을 가져 오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엔숍은 여러 물건을 파격적으로 싼값에 파는 일본 특유의 잡화점 시스템을 말한다. '100엔숍'이라는 이름도 한국 돈 약 1100원에 해당하는 백엔짜리 동전 하나로 각종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살 수 있다는 데서 따왔다.

지난 20년간 100엔숍은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움츠러들면서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진출한 '다이소(大創)'는 1999년 900개 수준이던 일본 내 매장 수를 지난해 2680개까지 늘렸다. 일본 내 4대 100엔숍 업체들의 매출도 지난해 5400억엔(약 5조8900억원)을 기록, 10년 새 60%나 늘었다. 100엔숍은 '일본의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고 WSJ는 전했다.

이 모든 게 엔화 강세에 따라 중국과 동남아 제품을 싼값에 들여올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일본에선 100엔짜리지만 현지 공장에서는 제값을 주고 만든 상품이라 가격 경쟁력이 높았다. 다이소의 야노 히로다케(矢野博才) 회장은 "중국에서 99엔짜리 물건을 들여와 100엔에 팔면 1엔이 남는다"고 경영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이제는 단 1엔의 이윤도 거두기 어렵게 됐다. 100엔숍 체인인 'US마트'를 운영하는 이케다 야스아키 매니저는 WSJ에 "판매대에 진열된 상품 중 90%는 수입품이고, 이 가운데 80%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며 "달러당 엔화 환율이 5엔만 올라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1시 기준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1엔을 돌파했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지난해 11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총선에 나서면서 양적 완화를 내세운 이후 26% 떨어졌다.

100엔숍들은 일단 포장 단위나 물건 크기를 줄이는 식으로 위기에 맞설 계획이라고 WSJ는 전했다. 100엔숍의 특성상 가격을 올려버리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 생산 제품 비중을 줄이고 일본산(産) 제품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WSJ는 "일부 업체는 임금 삭감이나 감원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y 100명 2013. 5. 10.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