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오징어] 장르와 오징어의 상관관계…"액션의 친구 vs 멜로의 적"

기사입력 2008-06-11 13:06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기자] '팝콘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극장의 대표 간식은 누가 뭐래도 오징어다. 자극적인 냄새는 물론 끊임없이 치아 운동을 병행해야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오징어가 주는 맛과 중독성은 그 어떤 간식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시골 극장 어디에서라도 오징어 노점상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도심의 극장가에서 갓 구운 오징어를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서울 극장가에서 오징어 매점 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종로 일대와 신촌 일대 정도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징어를 굽기 시작해 2000년대 한국영화 번영와 위기를 함께 겪은 신촌 A극장 역사의 산증인 오징어 노점상 아저씨를 만나봤다. 영화 관람객은 "오징어를 먹는 사람과 팝콘을 먹는 사람으로 나눠진다"는 아저씨의 말이 범상치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징어 매출은 관객의 유형과 영화의 장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오징어 아저씨가 밝힌 '영화 장르와 오징어 매출의 함수관계'를 정리해봤다.

◆ 블록버스터가 인기면 오징어도 불티난다?

'팝콘무비'라는 말이 있다. 팝콘을 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킬링 타임용 영화 즉 오락영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단어의 기원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극장의 간식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점상 홍사천씨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에서도 규모가 큰 대작영화가 흥행할 경우 오징어 매출도 동시에 상승한다고 말했다. 2002년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각각 1000만 흥행 신화를 이뤘을 때는 장사 이래 최고 번영기를 누렸고 지난해 외화 '트랜스포머'와 '디워'가 돌풍을 일으킬 당시에도 평소보다 40%가랑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대거 관람을 할 수 있는 영화다 보니 오징어도 잘 팔렸던 것 같다"며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단순한 스토리와 가벼운 느낌의 영화일수록 영화와 간식을 동시에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커플관객, 오징어보다는 팝콘 선호

장르뿐만 아니라 관객 성비율이 매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커플단위 즉 이성끼리 영화를 보러오는 경우보다 동성끼리 관람할 시 오징어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홍씨는 "얼마 전 소개팅 후에 처음으로 영화데이트를 하러 온 고객이 있었는데 오징어를 사려다가 팝콘을 먹는게 나을 것 같다며 자리를 떴다. 첫 데이트라 오징어보다 팝콘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인 사이일 경우 냄새가 강한 오징어보다는 깔끔한 팝콘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 끼리든 여자 끼리든, 동성 친구끼리 왔을 때는 맛을 우선시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홍씨의 가게 손님 중에는 남-남, 여-여끼리 짝을 맞춰오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특히 이화여대랑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여대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 "그래도 불황에는 장사 없더라"

과거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외화가 동시에 성행할 때는 일정의 매출 법칙이 성립됐다. 그러나 최근 영화계에 유래 없는 위기가 찾아오면서 판매를 예측하기란 힘든 일이 돼 버렸다.

블록버스터든 멜로든, 커플이든 동성이든 예전보다 눈에 띄게 발길을 줄었다고 한다. 영화산업의 위기는 극장 주변 생업 종사자들에게도 적잖은 여파를 미치고 있었다. 평일에는 5만원~10만 원선, 주말에는 10~20만 원 선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창 한국영화가 잘나갔던 2002년과 비교해봤을때 50%가량 매출이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최근 ‘쿵푸팬더’와 같은 어린이를 겨냥한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매출 유지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by 100명 2008. 6. 11.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