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오징어] 오징어 아저씨, 한국영화에 바란다…"단골손님 잡으려면?"

기사입력 2008-06-11 13:06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기자] "어렵다 어렵다 환경만 탓하지 말고 두 배, 세배 죽어라 뛰어야지"

한국영화가 위기라고? 그래 어렵지 어렵고말고. 나도 요즘 피부로 느끼고 있어. 장사가 안되도 이렇게 안 되던 때도 없었던 것 같아. IMF때 회사 퇴직하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게 장사질인데 요즘 같아선 일할 맛 안 나지.

왜 힘든걸 모르겠어? 영화계를 짊어지고 있는 제작자, 감독들은 더 죽을 맛이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그 사람들이 잘해야 관객도 웃고 우리도 웃을 수 있는데. 힘내서 뛰고 또 뛰어야지. 한국영화 외면하는 관객들한테는 더 좋은 영화로 유혹하고, 스크린 쿼터제로 문이 좁아지면 틈새시장이라도 공략해야지.

나도 경쟁시대에 살고 있어. 서울 극장가에 오징어 노점상이라고는 종로 일대랑 신촌 여기 달랑 두 곳이야. 종로쪽 사정도 말할 수 없이 힘들다더군. 상황은 어려운데 매달리는 사람은 많고 관객은 적으니 치열할 수밖에….

이 자리에서 장사한지 올해로 10년째야. 나도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이었지. 월급쟁이 하다가 장사하려니 쉬운 게 어디 있어. 자리 잡기도 힘든 마당에 시에서는 노점상 단속한다고 수시로 찾아오지. 관객 입맛에 맞는 오징어 굽기도 힘들지. 암튼 처음에는 그랬어.

그런데 말이야. 음식장사는 맛과 서비스 그 두 가지면 되더라고. 3천 원짜리 버터구이 오징어 만드는데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 오징어는 얼마나 찍히며 버터 비율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거든. 나만의 맛을 만드는데 시행착오도 많았지.

두번째는 서비스야. 내가 있는 이곳은 이화여대가 가까워서 여대생들이 많이 와. 처음에는 맛있다고 오더니 나중에는 서비스가 좋다고 다른데 마다하고 우리 가게에 오더라고. 서비스라는 게 결국은 정이지. 여름에 날씨 더울 때 기다리면 쥐포 한 마리 더 얹여주고 버터구이 구을때 다리 한 마리 더 넣어주고 그정도지뭐.

일회성 손님이 단골이 될 때 얼마나 뿌듯한지. 얼마 전에 내가 오징어 굽다가 얼굴에 화상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약을 사가지고 온 여대생이 있더라고. "아저씨, 다치셨는데 뜨거운 불에서 계속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요."라며 약을 건네는데 눈물이 핑 나더라고. 그리고 여름에는 더운데 고생한다고 캔 식혜를 사다주기도 하고 내 딸한테도 못 받아본 호강할 때가 있다니까.

결국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실력과 서비스인거 같아. 고객을 내 사람으로 만들 만한 확실한 무기만 있다면 불황에서도 살아남을 수는 있어. 나는 솔직히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일에 매달리다 보니 볼 시간도 없고 말이야. 가끔 아들놈이 재밌는 영화 있다면서 데려가면 한 번씩 보는 게 다야.

근데 말이야. 어렵다 말만하면 답이 안 나오는 건 확실해. 어려울 때일수록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스크린 쿼터다 뭐다 나라 정책도 안도와 주지, 영화 티켓 값도 올라 관객들도 줄어들지…. 여건이 힘들면 악조건을 넘는 무기를 만들어야하지 않겠어?

아들놈 얘기 들어보니 어렵기는 음악시장도 마찬가지라 하던데. 앨범은 많이 팔아봤자 10만장이라며? 영화는 대박 터지면 500만, 600만은 거뜬하잖아. 한국 영화가 발전해온 길을 잘 돌아보면 위기는 분명 기회야. 작지만 힘 있는 영화 꾸준히 만들면서 기회를 보면 분면 '국민영화'는 또 나오게 돼있어.

생각해보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아마 90년대 후반부터였지. 아마 내가 퇴직하고 장사 시작할 즈음이었을 거야. 지난 시절 되돌아보면 웃고 울일 많았던 것 같아. 영화라는 게 잘 만들기도 힘들고 또 그만큼 흥행하기도 힘들잖아. 관객들의 마음도 오리무중이라 추측하기도 힘들고.

한국영화는 몇 년을 주기로 오르락내리락 했잖아. 내 연간 매출만 봐도 그렇거든. 근데 결국에는 살아나더라고. 나는 이번 위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 다만 얼마나 더 노력하고 애쓰느냐에 따라 시기는 짧아질 수록 길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요즘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들이 잘되서 극장가가 조금은 활력을 찾은 것 같아. '아이언맨' '인디아나 존스'가 개봉하면서 관객들이 늘더니 지난주에 '쿵푸팬더'가 나오면서 부쩍 손님들이 는거 같아. 저 만화영화가 뭐라고 저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는데 웃으면서 나오는 관객들 보니 내가 괜히 뿌듯하더라고. 예전에는 우리 한국영화 보고 나오면서 저렇게 웃음꽃 피는 관객들도 많았는데 말야. 최근엔 '추격자' '우생순'이후로는 뜸했지.

우리도 기찬 영화로 관객들 웃게 해야 하는 날도 곧 오겠지. 나는 믿어 그날이 머지않았다고. 위기일발이지. 구렁텅이는 아니잖아. 그래도 희망은 있어. 위기는 곧 기회니까.

by 100명 2008. 6. 11.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