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일본의 초강력 '엔저(円低) 공습'으로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중국의 성장 둔화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한층 더 끌어내릴 복병으로 등장했다. 일본의 상승세와 중국의 하락세가 양쪽에서 동시에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며 '한·중·일 경제 삼국지'를 새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4년 7개월 만에 엔 환율이 달러당 102엔을 넘어서는 등 선진국이 용인한 엔저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올해 중국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면서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평균 8.0%에서 7.8%로 하향조정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5일 보도하기도 했다.

7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엔저 정책은 우리 경제 곳곳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해 9월 자산매입 기금을 10조엔 증액하는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내놓으며 엔저 공세를 시작했다. 산업통계 제공 회사인 CEIC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1분기까지 일본 기업의 달러 표시 수출품 단가는 평균 5.0% 인하된 것으로 집계했다. 품목별로 철강(1차) -10.6%, 화학 -9.8%, 섬유 -9.2%, 전기·전자제품 -8.2%, 일반기계·자동차 -3.0% 등의 단가 인하가 이뤄졌다.

올 들어 달러 강세로 한국 수출품의 달러 표시 단가도 하락했지만 5개월간 인하율은 고작 0.5%에 불과했다. 결국 세계시장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일본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한 셈이다. 원·엔 환율이 1% 떨어지면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0.18%씩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중·일 3국의 경제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샌드위치론'이 지금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은 달아나고 중국은 쫓아와 한국이 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말하며 위기의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던 이 회장이 지난해 초에는 "일본은 힘 빠지고 중국은 멀었다"며 샌드위치론의 폐기를 선언했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지식·소프트웨어 산업을 통한 대중국 기술우위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자업계를 중심으로 또다시 '샌드위치론'이 부각되고 있다. 일본 가전업체들이 엔저를 등에 업고 반격에 나선 데다 중국 업체들도 기술력을 키워 추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과 중국의 경제 기조에 따라 한국의 성장률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다시 제기되는 이유는 샌드위치 이론으로 설명하기엔 복잡해진 3국의 경제 연관성 때문이다. 일본 엔저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듯 중국의 성장 둔화도 국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한국으로서는 '설상가상'인 셈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1992년 3.5%에서 2011년 24.1%로 증가했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가공돼 다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실적은 중국이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실적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경향은 증시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한국 증시는 세계 증시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주요 국가 대부분이 상승했지만 코스피만 하락한 '디커플링'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상하이 증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조윤남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유럽·일본 증시와 다르게 한국 증시가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과는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의 성장 둔화 조짐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중국의 고정투자 전년비 누적 증가율은 20.6%로 3월(20.9%)보다 0.3%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달까지 누적 산업생산 증가율도 9.4%로 3월(9.5%)보다 0.1% 포인트 하락했다. 김유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선진국 수요 부족으로 중국의 수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의 대중 수출 실적도 덩달아 악화됐다"고 우려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중·일 분업 관계가 최근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경제에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적절한 대응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5. 18.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