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뉴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전통 사회에선 마을공동체 전체가 ‘사는 법’ 교육에 참여했다. 오늘날 ‘사는 법’은 자기계발(self-help)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사는 법’은 자기계발에 힘쓰는 사람이나 관심을 갖는 ‘몰라도 그만, 알아도 그만’인 게 됐다.

이제는 마을이 아니라 나 홀로 ‘사는 법’을 익혀 스스로를 도와야 하지만, ‘사는 법’의 핵심마저 바뀌어 혼란스럽다. 세계 곳곳에서 사랑이 가치체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효(孝)가 있었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섰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이다. 효보다는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날들이다.

‘사는 법’의 고갱이라 할 ‘사랑하는 법’을 배울 곳도 마땅치 않다. 학교에서도 성교육 시간은 있어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시간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43·사진)은 ‘사는 법’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애소설을 다수 출간한 ‘사랑 전문가’이기도 한 그를 지난 1일 전화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철학을 “평범한 것들에 대해 아주 깊게 생각해보는 시도”, 사랑을 “최고 형태의 이해”라고 정의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사랑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뭔가.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게 출발점이다. 사회도 사랑을 이해하거나 사랑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교육이 문제다. 우리는 수학·회계학·생물학·물리학 등 수많은 분야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행복을 좌우하는 사랑에 대해선 아무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진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안다. 경영진과 근로자들 사이에 세련된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한다. 비행기 운전면허를 받으려면 수천 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반면 사랑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행복한 가정은 어떻게 달성되는지에 대해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사랑을 가르쳐야 하나.

“절대적으로 그렇다. 물론 교육시스템에는 사랑과 관련된 많은 것이 등장한다. 소설, 시, 연극,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러브스토리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교수법에 문제가 있다. 학생들이 ‘나는 이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고 묻고 대답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섹스리스 부부도 둘만 괜찮다면 OK

-할리우드 영화들도 그런대로 참조할 만한 사랑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앙이다. 사랑의 전체상을 외면하고 사랑의 첫 순간들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 누구나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만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이 사랑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할리우드는 또한 여러 종류의 사랑 중에서 성애(性愛)나 ‘사춘기적인 사랑(adolescent love)’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한다. 로맨틱한 사랑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랑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게 비정상은 아니다. 꽤 괜찮은 ‘어른의 사랑(adult love)’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사랑을 문제시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기준으로 삼으면 불행하게 된다.”

-섹스리스(sexless) 부부에게도 사랑이 가능한가.

“그렇다고 본다. 누가 뭐래도 그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이다. 외부 압력 때문에 불필요하게 자신들이 비정상적이라거나 불행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데.

“사랑과 섹스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은 판타지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인 생각은 아니다. 유래는 기독교다. 섹스는 사랑의 표현이어야 하며, 섹스 없는 사랑은 나쁘다는 것, 사랑이 있는 곳에는 숭고한 섹스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빈번히 혼외정사를 하거나 여러 번 결혼하는 ‘개방형 결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수많은 성적인 모험(sexual adventure)을 감행하면 고통이 따른다. 그 반대도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건 어떤 쪽의 고통이 내게 최선인지 파악해야 한다.”

-사랑에도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사랑의 창의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30년을 같이 산 사람이라도 매일 미스터리다. 창의적인 눈으로 보면 그에게서 새로운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비관적이 된다.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서로의 모습이 못마땅하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감춰진 구석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

 

완벽 기대하니 분노 … 사랑을 죽게 만들어

-사랑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은 어떤 게 있나.

“대부분의 책은 사랑과 관련이 있다. 특정 책을 권하는 것보다는 정신분석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싶다. 정신분석은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적 발명이다. 정신분석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기 시작하며 사랑에 대해 유년기부터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한다. 정신분석의 도움으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더 잘 준비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사랑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문제가 있다. 당신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Religion for Atheists)(2011)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종교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랑의 지혜에는 어떤 게 있나.

“아마도 모든 종교는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신(神)이나 신적인 존재는 완벽하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종교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더라도 더 많이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분노는 사랑을 죽게 만든다.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화를 내지 않게 될 거다.”

-화가 나지 않더라도 사랑은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있다.

“사랑 때문에 슬픈 것은 괜찮다. 사랑의 슬픔은 너무나 복잡한 사랑의 본질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에서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 사랑은 최고 형태의 이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사랑에 착수하기 전, 우리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사랑이 이해라면 가장 잘못된 이해는.

“나는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요구다. 유년기에 형성된 신화다.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면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 돼야 한다.”

by 100명 2013. 5. 26.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