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오동희기자][[이건희의 신경영 20년/ < 하 > -1]국가와 국민, 인류기여를 꿈꾸는 삼성]

"(신경영) 20주년이 됐다고 안심해선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더 열심히 뛰고 사물을 깊게 보고 멀리 보며 연구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은 지난 4월, 3개월간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 신경영 20주년을 맞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 중앙)은 항상 위기를 강조한다. 글로벌 톱 기업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도 언제 위기에 봉착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살고 있다. 해외출장 후 김포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회장./뉴스1=박철중 기자.

이 회장은 "5년 후나 10년 후 삼성이 현재 세계 1위를 하는 제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며 수시로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 회장의 머리 속에는 최고의 기업이 순식간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기억들이 남아 있고, "이제 됐다"고 할 때가 위기라는 점을 항상 강조해왔다.

삼성의 지난 75년 성장은 성공적이었다. 특히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 그룹을 이끈 이건희 회장은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성을 넘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회장의 리더십으로 삼성은 한국 최고에서 세계 최고로 변모했다.

삼성의 이같은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계속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이 회장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987년 12월, 삼성의 2대 회장에 오른 후 개혁을 외치면서 '롤 모델'로 삼았던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풍파에 쓰러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때가 될 때마다 위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삼성이 당면한 리스크는 △모바일에 편중된 그룹 전체의 사업구조와 △10년 후를 책임질 다음 먹거리의 부재, 그리고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반기업 정서의 심화 등이다. 또 △대외적으로는 애플은 물론, 거대 자본과 시장을 무기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기업들이 삼성에게는 위협요인이다.

이를 극복하고 100년 기업 삼성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핵심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노력을 더욱 경주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삼성의 성장 국민과 함께..미래도 사회와 함께=

삼성의 창업정신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 있다. 사업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일본 유학길에 부관(釜關)연락선(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여객선)을 타고 가다가 나라 없는 '조선인'이라는 수모를 겪었던 때부터 나라가 부강하지 않으면 국민도 천대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인재제일과 함께 사업보국을 사시의 하나로 삼았다.

이건희 회장도 이를 이어받아 국민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초일류 기업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래 인재육성과 기술확보, 시장개척에 힘을 쏟고, 사회공헌에도 노력을 기울였다"며 "취임 초 삼성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해 신경영을 선언하며 낡은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청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고, 위대한 내일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 삼성의 제품과 서비스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 기업의 모습은 고객과 주주는 물론 국민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사회와 함께 가기 위해 매년 4000억원 이상을 사회공헌에 투입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없애기 위해 '드림클래스' 등 희망의 사다리를 놓고,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다문화 가정 등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삼성 임직원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와 국민의 지원이 없었으면 오늘의 삼성은 있을 수 없었고 불가능했다"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삼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삼성이 가장 갈구하는 '1위'는 그 어느 것보다도 '국민사랑 1위'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오른쪽)은 1년의 절반 가량은 해외고객사들을 만나고, 삼성을 알리기 위해 비행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부회장.

◇브라운관, 반도체, TV, 휴대폰..다음은 뭐?=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1983년 D램 시장에 진출해 1993년 D램에서 첫 세계 1위에 제품을 내놓았다.

삼성은 브라운관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기반으로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해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씨앗으로 LCD 세계 1위에 이어 2006년 꿈에도 그리던 TV 세계 1위에 올랐다. 또 반도체와 LCD, TV 세계 1위의 밑바탕은 14년간 세계 1위를 지켰던 난공불락의 핀란드 노키아를 제치고 지난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아시아의 싸구려 전자업체로 괄시받던 기업에서 전세계인의 가정에 삼성 TV를 놓고, 전세계인의 손에 삼성 휴대폰을 쥐게 만든 기업으로 20년만에 변모한 것이다.

최근 삼성 내부의 가장 큰 고민은 '지금이 정점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 브라운관, 반도체, LCD, TV, 휴대폰의 성장 공식을 이어갈 다음 아이템의 부재가 최대 고민거리다. 재건을 꿈꾸는 일본과 거대시장과 자금력을 동원한 중국의 발 빠른 추격은 '샌드위치론'을 펼쳤던 이 회장의 인식처럼 여전히 삼성과 한국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은 휴대폰에 치중돼 있는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와 헬스, 신재생에너지, 로봇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회장이 고민하는 미래는 단순히 1등하는 제품을 몇 개 더 늘리느냐 하는 사업부문의 변화가 아니라, 미래에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이고, 기업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회장이 현재까지 찾은 답은 구체적 사업형태가 아니라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 경쟁력' 강화다. 이 두 가지 무기가 있으면 최소한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변화든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 태종이 신하인 위징에게 물었던 '창업과 수성의 어려움'에서 가장 큰 차이는 위기의식이다. 창업 과정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위기극복을 위한 마음가짐이 돼 있지만, 창업 후 나라가 안정되면 이같은 긴장이 풀어지고 교만해져 다시 천하를 빼앗기는 형국이 역사에서 반복돼 왔다.

이 회장이 항상 마음에 위기의식을 품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회장의 이런 위기의식을 그의 뒤를 이어 삼성을 이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늘 갖고 있는 듯하다.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로 돌며 삼성의 제품을 소개하고, 경쟁자들과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수립에 보내는 것을 보면 그렇다.





by 100명 2013. 6. 7.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