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계열사인 현대다이모스가 새 공장을 증축하면서 생산직 전원을 사내하도급으로 채우는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들기로 했다. 완성차 공장에서 불법파견 문제로 대규모 소송이 진행 중인 현대차가 새로 세우는 계열사 공장엔 정규직이 없는 사내하청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이다. 충남 서산에 있는 현대다이모스는 자동차 변속기와 차축 등을 생산하는 부품회사다.

현대다이모스 노사는 지난달 31일 서산시 성연면에 새로 증축하는 1만여평의 신규공장을 전체 도급화하기로 합의했다. 노사합의서를 보면 현대다이모스는 신규사업에 필요한 인원 중 4명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정규직 채용 분야는 회사가 알아서 판단키로 했다. 노조 관계자는 "신규공장 생산직 중에 현대다이모스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7월에 완공할 예정인 새 공장에는 18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채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는 '비정규직 공장'은 현대차가 제시한 납품단가에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며 "도급화만이 살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회사가 직원들을 상대로 낸 담화문에는 "제품설계, 부품개발, 제조원가까지 완성차(현대차)의 주도로 사전 결정이 돼 있다"며 "전체를 사내하도급으로 운영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변속기 부품업체인 현대다이모스가 7월에 완공될 새 공장을 짓고 있는 충남 서산시 성연면 신당1로의 신축공사장. 새 공장의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 현대다이모스 노동자 제공

▲ 동희오토 바로 옆에 증축… "도급화는 선택 아닌 필수"
현대다이모스 사측 주장 경제민주화 흐름 역행


노사합의를 놓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갈등과 반발이 일고 있다. 한 조합원은 "인건비를 줄이고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해 새로 짓는 공장 생산직을 100% 사내하도급으로 채용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사회적 논의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다이모스는 '비정규직 공장'의 원조 격인 동희오토와 닮은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다이모스 바로 옆에 있는 동희오토는 정규직 생산직이 한 명도 없으며 13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7개 사내하청 업체에 쪼개어 고용돼 기아차 '모닝'을 생산 중이다. 충남 서산 일대에 '비정규직 공장' 벨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설립된 동희오토는 국내 유일한 완성차 외주 조립업체이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기아차나 동희오토와 표면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노동자 1300여명은 17개의 서로 다른 사내하청 업체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내하청 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낮은 인건비로 쓰면서 직접고용에 따른 부담은 없으니 '일석이조'다. 현대다이모스와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서산 일대에서 이러한 '비정규직 공장'이 급속도로 확산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다이모스지회가 지난달 27일 조합원들에게 알린 홍보전단. 사흘 전 노사 교섭 중에 사측이 "회사 발전을 위해 신규공장 도급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밝힌 것을 전하고 있다. | 현대다이모스 노동자 제공

이백윤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장은 "주변에 새로 지어지는 공장들이 거의 비정규직 공장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정규직 공장에서 비정규직 공장으로 고용구조가 바뀐 곳도 있고 새로 공장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100%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지는 공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현대·기아차의 AS부품을 만드는 현대파텍스도 생산직은 거의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며 "대부분 3~6개월의 단기계약을 맺고 일하는데, 지난해 100여명이 한꺼번에 계약해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물량이 있으면 사내하청을 채용했다가 없으면 줄이는 식으로 손쉽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동희오토보다 훨씬 열악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짜여진 중소영세업체가 많아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며 "대기업에서 외주를 줘서 만드는 비정규직 공장만 서산에 세 곳 정도이며, 동희오토에 기아차 모닝의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 중에도 비정규직 공장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공장'의 노동여건은 전반적으로 열악한 데다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이 지회장은 "최저임금보다 100~200원 높은 수준의 시급을 받는다"며 "시간당 실제 작업시간을 뜻하는 편성률도 90% 정도로, 현대·기아차 50~60%보다 높아 쉴 틈 없이 계속 차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동희오토는 연말보너스가 나와 사정이 낫고, 새로 만들어지는 비정규직 공장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 지회장은 "과거에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채용돼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게 불만이었는데, 요즘에는 정규직 일자리가 거의 없다보니 아예 비교대상도 사라지고 있다"며 "주변에 정규직 일자리가 말라붙어 갈 곳이 없고, 고만고만한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일자리만 있다보니 다들 억눌린 분노와 불만은 있지만 일상적으로 체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현대다이모스의 정규직들도 새로 증축될 신규공장이 비정규직 공장이 되면 정규직의 임금·노동조건이 악화될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다이모스노조의 한 정규직은 "한쪽 공장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도급공장이고, 한쪽 공장은 정규직 공장이 되면 임금이나 생산성 모든 것이 비교대상이 될 것"이라며 "현대차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부품사인 우리는 아직 주야 맞교대로 교대제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뜩이나 특근이나 잔업을 하지 못해 수입이 줄어드는데 앞으로 정규직의 고용조건도 나빠질까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현대다이모스는 새 공장을 도급화하는 대신 정규직 40명을 신규채용해 기존 공장에 충원키로 한 상태다.

현대다이모스의 비정규직 공장은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며 현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규직 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정책과도 거꾸로 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비정규직 공장은 대기업 제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 조사 결과 생산직 정규직이 0명인 비정규직 공장은 2011년 기준으로 동희오토 외에 STX중공업,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등이 있다. 현대모비스 12개 공장 중 울산·이화·아산·서산공장 등 8곳은 생산직의 74~95%가 사내하청이며, 현대위아 4개 공장 중 3개 공장은 86%가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계열사의 일자리나 생산물량이 늘어나 신규공장을 증축하면서 비정규직 사내하청으로 채워넣고 있다"며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 비정규직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동희오토와 같은 비정규직 공장은 외형상 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파견의 내용을 띠고 있다. 불법파견을 피해가기 위해 편법적으로 비정규직 공장을 따로 지어버리는 것이고 법의 맹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파견과 도급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원칙적으로 상시·지속적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6. 10.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