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0년 만기 국채 금리, 지난달 초보다 0.5%p 상승… 中도 국채 발행 사실상 실패

超저금리에 오래 길들여져 작은 상승에도 큰 쇼크 우려… 1994년의 악몽 재연 가능성

한국 기업 외화채권 발행 연기… 채권펀드 수익률 마이너스로


금리 상승의 공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위기 때 풀린 돈을 회수하는 것) 우려로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신흥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등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돈줄이 마르면서 기업들은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개인들은 돈을 묻어 두었던 채권형 펀드 수익률이 줄줄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한숨짓고 있다. 서민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은행 대출 금리도 오를 조짐이다.

시장에서는 '1994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미 연준은 연 3%로 묶어놨던 기준금리를 1994년 2월부터 1년 동안 연 6%까지 끌어올리면서, 미국 채권시장발(發) 쇼크가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었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준 의장은 저축대부조합 사태 등이 마무리되면서 미국 경기가 회복세로 들어서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시장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해 채권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미국에선 채권 투자를 많이 했던 오렌지 카운티가 파산했고, 신흥국에선 대거 자금이 빠지면서 멕시코에서 외환 위기까지 발생했다.

그때만큼 금리 상승이 가파르지 않더라도, 초(超)저금리에 세계가 길들어 있기 때문에 작은 금리 상승이 큰 쇼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도 채권 발행 실패…미국·일본 등 글로벌 채권시장 돈줄 흔들

전 세계 채권금리의 바로미터(기준 지표)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14일 뉴욕시장에서 연 2.13%로 마감했다. 지난달 초 대비 0.5%포인트 상승했다. 월별 상승폭으로는 2010년 12월 이후 가장 컸다.

이에 따라 주요국 시장금리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은 미국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양적완화 규모를 줄일 경우,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이 줄어들어 금리 인상과 같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미국의 만기 10년짜리 국채 입찰에서는 경쟁률이 2.53대1을 기록해 작년 8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14일 만기 273일짜리 국채를 150억위안어치 발행하려고 했으나 수요가 없어 95억3000만위안어치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채권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잘 소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시장금리에 연동한 대출 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미국 주택금융업체 프레디맥에 따르면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13일 평균 연 3.98%로 지난달 초(연 3.35%)보다 0.6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작년 4월 초의 연 3.98% 이후 최고치다.

한국도 금리 상승 직격탄…채권 투자 손실 나기 시작

수출입은행은 최근 호주 금융시장에서 3억달러 이상의 '캥거루 본드(해외 기업이 호주에서 호주달러로 발행하는 채권)'를 발행하려고 했으나 이를 잠정 연기했다. 우리 정부도 10억달러 규모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검토했으나, 아직 시기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은 물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의 대기업이나 공기업들도 당초 이달 외화채권 발행을 검토했다가 이를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국채금리(10년 만기 기준)도 지난달 초 연 2.73%에서 14일 연 3.19%로 오르면서 국채금리에 연동한 적격대출 금리가 상당폭 올랐다. 우리은행의 10년 만기 적격대출은 지난달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을 때 연 3.75%를 기록했지만 최근 연 4.17%로 치솟았다. 신한은행 적격대출 금리도 지난달 9일 연 3.8~3.9%에서 14일 연 4.2~4.3%로 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총 7조2000억원 증가한다.

채권 투자자들은 수익률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은 14일 우리나라의 일반채권형 펀드 수익률은 지난 1개월간 마이너스 0.3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채권 투자에서도 손실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1994년 글로벌 채권시장 붕괴 재연되나?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상황을 보면 투자자들이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으로 큰 손실을 보며 충격을 받았던 1994년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상승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멕시코 국채 투매로 이어졌던 1994년과 현재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20년 전처럼 급격히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아 보인다. 미 연준은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현재의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도 지난 14일 미국에 대해 “출구전략은 신중한 커뮤니케이션과 시점 선택이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지금 글로벌 경제는 초저금리에 상당 기간 익숙해져 있는 데다 1994년 당시보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작은 쇼크에도 크게 반응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994년엔 금리 인상 쇼크 이후 미국·유럽 등의 호경기가 이어져 신흥국이 수출 증가 및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당시처럼 호황을 탈 가능성이 작은 데다, 초저금리에 길들어 금리 인상에 대비한 위험 회피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이사는 “모든 금융위기는 거품 붕괴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현실에서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다”면서 “국가도, 기업도, 가계도 금리 인상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13. 6. 17. 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