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만에 주가 80%·엔환율 30% 껑충...최근 20일새 주가 22%·엔환율 8% 급락]

지난해 말부터 일본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아베노믹스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1만6000선을 위협했던 닛케이225지수는 한동안 1만2000선대로 고꾸라졌다가 17일 간신히 1만3000선을 회복했고, 104엔을 돌파할 기세였던 엔/달러 환율은 94엔대로 주저앉았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선언한 지난해 11월14일 이후 주가와 환율이 상승분의 절반을 고스란히 내준 셈이다. 아베노믹스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 200여일이 지난 지금 일본 경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베노믹스 200일...日 금융시장 파란

아베노믹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을 가리킨다. 통화를 무제한 푸는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엔저)를 유도해 수출을 늘리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게 핵심이다. 수요 창출, 소비·투자 증가라는 선순환을 일으켜 20년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은 디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는 게 목표다.

아베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13조1000억엔(약 155조26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를 통해 시중 통화 공급량을 두 배로 늘리는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효과도 빨랐다.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엔화를 팔고 주식을 사는 '아베트레이드'가 성행했다. 덕분에 닛케이225지수와 엔/달러 환율은 연일 신고점으로 치달았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해 11월14일 이후 5개월간 상승폭이 80%가 넘었고, 엔/달러 환율은 30% 이상 급등(엔화값 급락)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오른 주가와 환율은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하락속도는 오히려 더 빨랐다. 지난 5월24일 7.3% 폭락한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13일 6.4% 급락하기까지 20여일간 무려 22.4%나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엔/달러 환율은 8.1% 하락했다.

그 사이 엔저의 부작용으로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락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더 자극했다.

사실 아베노믹스의 가시적인 성과로 꼽힌 '주가 상승-엔화값 하락' 추세는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게 아니었다.

통상 한 국가의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현지 증시는 뛰고, 통화 역시 귀한 대접을 받아 가치가 오르는 게 보통이다. 일본에서 최근 주가와 환율이 함께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일반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일본 금융시장에 실물경제 흐름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외국인들이 선물시장에서 일본 주식을 사면서 이를 되팔 때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피하려고 엔화 매도 주문을 함께 낸 것이 이런 이상 행보의 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아베노믹스는 환상?...유효성 논쟁 격화

일본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격렬해졌다. 아베노믹스는 처음부터 환상에 불과했다는 비관론과 정책 효과가 실물경제 지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낙관론이 맞섰다. 벌써부터 아베노믹스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세를 불렸다.

오구로 가즈마사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지난 13일 도쿄 증시가 또 급락하자 트위터에 "아베노믹스 환상의 종언인가"라고 썼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한 인터뷰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아베의 바람대로 경제를 되살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4개월간 아베노믹스에 대해 일종의 근거 없는 열광이 있었다"며 "앞으로 과도한 실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그랜트 루이스 다이와캐피털마켓 유럽 리서치 부문 책임자는 "아베노믹스는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시장이 잠깐 흔들린 것은 아베노믹스 실패의 전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경제가 지난 1분기 연율로 4.1% 성장했고,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가 회복되고 있으며 고용시장도 개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정·재생상도 최근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일본 금융시장이 최근 요동친 것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 등 외부 요인 탓으로 아베노믹스나 일본 경기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의 공감대는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금융지표보다는 실물경제지표로 가늠해야 한다는 쪽에 맞춰져 있다.

◇日 경제 '리셋' 임금·투자 늘리는 게 관건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궁극적으로 성공을 이루려면 반드시 임금이 오르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경제가 지난 20년간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일본인들의 구매력과 실질임금은 줄곧 하향 추세였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도통 돈을 쓰지 않았고, 기업 활동은 위축됐다.

아베가 근 1년째 마이너스(-) 행진한 물가상승률을 2년 안에 2%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한 것도 결국 소비를 부추기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들의 투자·고용 확대와 임금인상을 자극해 내수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일본의 임금 정체 현상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올 봄 일본 기업들이 임금교섭을 한 결과 임금 인상률은 전년 대비 1.65%로 지난해(1.69%)보다 오히려 떨어졌다며, 임금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 역시 지난 1분기까지 2분기 연속 줄었다. 특히 자본금 10억엔 이상 대기업들은 감속폭이 지난 2011년 1분기 이후 가장 컸다. 토요타와 소니 등 대표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엔저로 대폭 개선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이제 아베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성장전략밖에 없다. 재정정책, 양적완화와 함께 아베노믹스를 이루는 '3개의 화살' 가운데 마지막이다. 아베가 최근 공개한 성장전략은 규제개혁을 통한 민간투자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지만,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표 당일 닛케이225지수는 4% 가까이 추락했다.

비판이 일자 아베는 올 가을 기업 감세를 골자로 하는 후속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다음 달 21일 치르는 참의원(중의원) 선거를 의식한 포석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베가 일본 경제를 '리셋'(초기화)하려면 과감한 개혁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고, 정치권의 분열이 극에 달하는 선거 국면에서 개혁에 제대로 시동이 걸릴지는 미지수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이미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아베노믹스에 반기를 들었고, 70%대로 고공행진 하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0%대로 급락했으니 말이다.

by 100명 2013. 6. 18.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