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실패한 우등생 3인의 '솔직 토크'

'명문대 진학'은 모든 중고생의 일생일대 목표다. 내로라하는 대학에만 들어가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라 여긴다. 정말 그럴까? 여기, "인생의 과녁을 대학에 맞춰선 안 된다"고 말하는 세 청년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때 '명문대 합격'의 감투를 써본 경험이 있다는 것. 언뜻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셋의 주장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익명을 보장해주겠다"는 다짐 끝에 얻어낸 이들의 진솔한 얘기에 귀 기울여보자.

조언1ㅣ'1등 강박관념' 빨리 떨칠수록 좋다

A(31)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모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로 3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지난겨울, 돌연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제주도에 정착했다.

중고생 시절, 그는 '자타 공인' 모범생이었다. 전문직 종사자인 부모님은 아들에게 최적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줬다. 집 안은 늘 책으로 가득했고 노력한 만큼 성적도 괜찮게 나왔다. '1등 강박관념'이 생긴 건 그 무렵부터였다. 다른 과목에 비해 유독 수학 점수가 잘 안 나왔던 그는 "이과 가면 1등을 놓칠 것 같아" 문과를 택했다. 대학 전공도 취업률에 맞춰 기계적으로 경영학을 골랐다.

취업 직후 본격적 고민이 시작됐다. 일단 입사 초기부터 업무량이 엄청났다.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했고 오후 10시 넘어서야 겨우 퇴근길에 나섰다. 주말 출근도 다반사였다. 그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루 10시간 넘게 하다보니 너무 고역이었다"며 "그제서야 '고민 없이 대세에 맞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흔히 명문대 졸업 후 좋은 데 취직하면 장밋빛 인생이 절로 펼쳐질 거라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슨 대학에 들어가느냐'보다 '어떤 일을 할 거냐'부터 고민하겠습니다."

조언2ㅣ진짜 창피는 '실패하고도 못 배운 것'

B(24)씨는 명문대 법학과 08학번이다. 하지만 요즘 그의 직업은 '레스토랑 서빙 담당 아르바이트'다. 학교엔 휴학계를 낸 상태. 장래 희망도 '외식업 종사자'로 바뀌었다.

B씨는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대구 수성구 출신답게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하게 노력했다. 모 자율형사립고 입학 후 조바심은 한층 심해졌다. "고 1 첫 시험에서 전교 12등을 했어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제겐 충격적 사건이었죠.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어요. 밤잠 줄여가며 노력한 끝에 겨우 전교 5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경쟁은 이어졌다. 1학년 때부터 학점에 매달리는 동기들을 보며 그는 점차 지쳐갔다. 전에 없던 폭식 습관까지 생겼다. '머리 식힐 곳이 필요해' 시작한 레스토랑 일은 뜻밖의 울림을 줬다. "처음엔 요령 부족으로 만날 혼났어요. 마냥 서럽고 억울했는데 차츰 '나도 못하는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맘이 편해지더라고요."

2년쯤 전, 우연히 사촌동생의 수시 전형 출제용 자기소개서를 봐주던 그는 '실패한 경험을 적고 그것에 대해 느낀 점을 쓰라'는 문항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실패다운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쩌면 실패가 무서워 발버둥쳐 왔는지도 몰라요. 실패의 원인은 무조건 '능력 부족'인 줄만 알았거든요. 하지만 실패 없는 인생이 어딨겠어요. 후배들에게도 '진짜 비참한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하고도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조언3ㅣ오롯이 '나 자신의 행복'에만 집중해라

C(23)씨는 부모 의사를 좇아 고 1 때 경기 성남시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이후 과목별 '학원 순례'가 이어졌다. 힘들었지만 내색 한 번 안 했다. '살림 규모까지 줄여가며 자식 교육에 전념하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C씨 부모는 아들에게 기대가 컸다. "우린 좋은 대학 못 갔지만 넌 꼭 가야 한다." 거듭되는 당부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의 꿈은 '서울대 진학'이 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 당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했지만 서울대 모 비인기 학과 입성에 성공했다. 부모는 기뻐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불안했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고 모든 일정을 직접 관리하는 대학 생활도 낯설었다. 1학년 과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입대했다. 제대 이후에도 복학을 미룬 채 여행 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C씨는 "중고생 시절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사람이 성인이 돼 갑자기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전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뭘 위해서'는 생각지 않았죠. '부모님의 행복'은 그 정답이 될 수 없어요. 부모님 그림자를 지우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비로소 행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by 100명 2013. 7. 8.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