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17살 소년을 29살의 자율방범대원이 총으로 쏴 숨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무죄 평결이 내려졌고 가해자는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그의 형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습니다.

2012년 2월 26일 저녁 7시 10분쯤, 17살의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미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한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후드티를 입고 있었습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음류수와 스낵을 사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그때 이 주택가 자율방범대원이었던 조지 짐머만은 차를 타고 동네를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마틴을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한 짐머만은 911에 "그가 나쁜 짓을 할 것처럼 보인다"고 신고했습니다. 이어 차에서 내린 짐머만은 "왜 이곳을 돌아다니느냐?"고 추궁했고 곧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신고 전화에는 '도와달라'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 뒤 두 발의 총성이 울린 것이 녹음됐습니다. 7시 30분, 출동한 경찰은 마틴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하고 짐머만을 연행했습니다. 하지만 짐머만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습니다. 마틴이 자신을 먼저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코피를 흘리고 있었고 머리 뒷 부분에는 찢어진 상처도 두 곳 있었습니다. 이 주장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은 5시간 뒤 그를 풀어줬습니다.지난 2005년 만들어진 플로리다의 'STAND YOUR GROUND(자기방어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집 안은 물론 밖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곧 바로 총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입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치명적인 방어수단을 사용하기 전 즉 총을 쏘기 전에 먼저 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만들어짐으로써 매우 주관적인 느낌만으로도 총을 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플로리다주 뿐 아니라 미 전역의 22개 주에서 비슷한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법이 총가진 사람들을 위한 법이며 총기 범죄를 사실상 조장해 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다른데 있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백인이었다면 그리고 가해자가 흑인이나 유색인종이었다면 과연 어떤 결론이 내려졌을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흑인 여배우는 "플로리다주에서 한 흑인 여성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막으려고 경고 사격을 했는데 20년 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며 이번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했습니다.


지난 1991년 LA 폭동의 시발점이 된 '로드니 킹'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4명의 백인 경찰관이 흑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하고도 무죄를 받은 사건입니다. 플로리다주 '자기방어법'도 논란이지만 흑인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이 문제를 철저히 인종차별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에 흑인이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입니다.흑인 재선 대통령에 법무장관까지 흑인인 미국이지만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곳이 또 미국입니다. 플로리다주의 법을 바꿔야 한다는 논쟁은 궁극적으로 총기소유를 둘러싼 논쟁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때문에 쉽사리 결론이 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는 사이 또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미국 사회 기득권자들의 논쟁이 약자들에게는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슬픈 논쟁'중입니다.

by 100명 2013. 7. 18.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