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한 e북을 다 읽고, 다른 이에게 되팔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마치 종이책을 중고책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비자에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느껴집니다. 최근 아마존과 애플 등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 같은 중고 디지털 콘텐츠 유통에 나서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신규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소비자들은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콘텐츠 제작사들은 수익 감소의 문제를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는 이슈, 중고 디지털 콘텐츠 유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온라인과 모바일 기반의 인터넷 환경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디지털 콘텐츠와 그 유통 방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스마트 기기들이 확산되면서 디지털 콘텐츠 시장 규모는 급격히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일례로 전 세계 음악시장의 경우 음반판매 등을 통한 오프라인 음악시장 규모는 2008년 144억 달러에서 2012년 94억 달러로 축소된 반면, 같은 기간 디지털 음악 시장 규모는 41억 달러에서 56억 달러로 성장했습니다.

디지털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불법 복제가 쉬워 시장규모가 실제 이용 증가율 대비 적게 추산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초기 디지털콘텐츠의 시장이 형성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이같은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자사 디지털 콘텐츠에 DRM을 걸어 이용자 간 불법 공유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원 구매자에 한해서만 해당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한해 왔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유통 구조에서는 이용자들이 합법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디지털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콘텐츠 제공 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아마존과 애플, 중고 디지털 시장의 포문 열다=여기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애플과 아마존 등 메이저 플랫폼 사업자들입니다. 이들은 중고 디지털 콘텐츠 유통을 위한 특허를 잇따라 취득, 콘텐츠 제공 업체가 아닌 소비자들 간에 직접 디지털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마존은 지난 1월 `디지털 물품용 2차 시장'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이용자들이 합법적으로 구매한 e북, 디지털 음원,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등 디지털콘텐츠를 다른 이용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마켓을 구상한 내용입니다. 특정 이용자의 개인화된 데이터 저장소에 보관된 디지털 콘텐츠를 다른 이용자의 데이터 저장소로 전송하고 자신의 저장소에서는 이를 폐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디지털콘텐츠의 중고 유통 횟수에는 제한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은 지난 2012년에 미국 특허상표청에 `디지털콘텐츠 아이템에 대한 접근 관리'란 명칭의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이는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해 판매되는 디지털콘텐츠의 DRM에 이용자 정보를 심어 놓은 후, 중고 판매를 통해 소유권이 변경된 경우 해당 사항을 DRM에 반영해 원 구매자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중고 거래 시 해당 콘텐츠의 저작권자에게 판매 비용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콘텐츠 거래 내역을 추적해 지적재산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감시하겠다는 계획도 담고 있습니다.

◇중고 디지털콘텐츠 시장에 대한 주요 쟁점은?=이 같은 경로를 통해서 소비자들은 이미 콘텐츠 제공자에게 정가를 지불하고 구매한 디지털 콘텐츠를 인하된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디지털 콘텐츠 거래량은 더욱 활발히 일어나고 여기에 파생되는 플랫폼의 광고나 새로운 수익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디지털콘텐츠 업계에서는 중고 마켓 형성에 따른 시장 축소를 우려하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새 것과 헌 것의 사용 가치에 전혀 변화가 없는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중고 판매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 풀어야 할 쟁점입니다. `중고'의 사전적 의미는 `이미 사용 했거나 오래돼 낡은 것'을 뜻하지만 디지털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도 사용 가치가 전혀 달라지지 않아 중고 거래의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미국 저작권법 상 `최초 판매 원칙'이 맞서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일단 매매를 통해 타인의 저작물을 소유하게 되면, 이를 제 3자에게 양도 혹은 대여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중고서점과 도서관 등의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논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디지털 콘텐츠의 중고 유통이 본격화되면 판매 가격 책정에서 저작권료 지급 방식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유통 전반에 걸친 사안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점도 쟁점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가로 판매되는 제품과 전혀 차이가 없다면 중고 디지털 콘텐츠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에 따라, 원 저작권자의 이익이 침해될 소지가 높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저작권자 측은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거나 거래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플랫폼ㆍ소비자 측과 저작권자 측이 나뉘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중고 디지털 콘텐츠 시장. 하지만 사실 양측 모두 윈윈(win-win)의 결과로 이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고 디지털 콘텐츠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일정 저작권료를 저작권자에게 지급한다는 전제 하에, 디지털 콘텐츠 가격이 하락되면 기존보다 훨씬 더 활발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저작권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플랫폼 사업자들은 수수료와 광고 등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콘텐츠는 더욱 빠르게 확산돼 K팝과 같은 문화 교류도 활발해 지는 등 전체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무작정 찬성, 반대를 외치기보다 상생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by 100명 2013. 7. 22. 0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