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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산업으로 주목받던 3D, 4D 영상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전용안경을 쓰고 3D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 <매경DB>

불과 2~3년 전만 해도 HD 영상의 뒤를 이을 차세대 사업으로 주목받던 3D 영상 사업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BBC, ESPN 등 세계적인 방송사들이 시청률 저조로 잇달아 3D 방송 포기를 선언하면서 3D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마저 제기되는 분위기다.

3D는 6㎝ 정도 되는 두 눈 사이 거리 때문에 발생하는 원근감을 이용한 입체적 영사 방식이다. 붉은색과 푸른색 필터가 붙은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 영상을 겹쳐놓고 적청안경(붉은색과 푸른색 필름이 씌워진 안경)으로 감상하면 두 눈에 각각 다른 영상이 들어오고 뇌에서 합쳐져 검은색의 3차원 영상으로 지각되는 원리다.

3D 영상은 영화에서 먼저 시작됐는데 그 역사가 의외로 깊다. 미국에서 최초 상업용 3D 영화로 알려진 ‘The power of love’가 상영된 것은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에는 TV가 등장하고 극장 관객이 줄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3D 영화 붐이 일었다. 이 시기 미국 내에서만 70편 이상의 3D 영화가 개봉됐다. 그러나 적청안경으로 보는 방식은 눈이 피로하고 색감도 어두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박은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2010년)’에서 터졌다. 행성을 오가는 거대한 스케일과 다채로운 영상미를 자랑한 이 영화는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3D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시각적 체험이라는 관객의 입소문을 타며 단번에 세계 흥행기록 1위에 올랐다. 3D 버전이 2D 버전보다 5달러 이상 더 비쌌지만 3D로 본 관객이 더 많았다.

덕분에 쏠쏠히 재미를 본 것은 극장가였다. 3D관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2D관의 1.5배 정도. 하지만 한 번 만들고 나면 500~1000원짜리 전용안경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추가비용이 들지 않고 안경도 수십 차례 재활용이 가능한 데다 관람료는 계속 1.5배를 받으므로 수익이 급증했다. 전국 2000여개 영화관이 앞다퉈 적어도 1관 이상씩을 3D관으로 개조한 배경이다.

3D 방송도 덩달아 들썩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방송이 3D로 생중계됐고 방송통신위원회는 3D 방송 상용화를 추진했다. 당장이라도 안방에서 3D 방송을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3D TV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3D TV 판매대수는 4145만대로 전년(2414만대) 대비 72%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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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관람률, 일반 영화 절반도 안 돼

그러나 이 같은 판매량은 사실 3D TV에 대한 ‘실수요’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3D TV는 일반 TV보다 20만원 정도만 더 주면 구입할 수 있어 TV를 구매하는 이들이 몇 푼 더 주고 3D TV를 샀다고 보는 게 맞다는 분석. 실제로 최근 시장조사업체 NPD의 설문 결과, 앞으로 3D 기능을 갖춘 TV를 사겠다고 답한 소비자는 전체 응답자의 14%에 그쳤다.

이런 인기 하락은 3D TV로 볼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고화질(HD) 디지털 전환으로 상당한 재원이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3D 카메라, 3D 편집기 등 고가 3D 제작 장비를 새로 도입하기 힘들었다. 3D 방송 콘텐츠가 HD 영상보다 전송량이 많으므로 전용 주파수 대역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것도 다양한 3D 콘텐츠 개발이 어려웠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전용안경을 껴야만 3D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는 불편함도 아쉬운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용안경을 끼면 선글라스처럼 사물이 어두워 보이기 때문에 3D TV는 일반 TV보다 빛이 밝은 편이다. 때문에 전용안경을 끼지 않은 다른 가족들은 눈의 피로를 호소하게 된다. 가장 편안한 휴식공간인 집에서 굳이 전용안경을 끼고 시청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을 것”이라며 “이제 안방 TV 시장은 3D TV에서 스마트 TV로 완전히 옮겨 가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더불어 5만~20만원에 달하는 비싼 전용안경 가격도 부담스럽다는 평이다.

때문에 세계적인 방송사들은 잇달아 3D 사업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스포츠채널인 ESPN은 지난 6월 3년간 운영했던 3D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영국 BBC도 올해 하반기를 끝으로 3D 콘텐츠 방송을 접겠다고 밝혔다.

국내 위성방송 사업자들도 최근 3D 방송 편성 계획을 철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D 영사장비를 납품하는 업체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D 입체영상 솔루션 전문업체인 KDC는 아바타가 한창 흥행하던 2010년 1월 주가가 15만원에 육박했지만 7월 11일 기준 1350원으로 폭락했다.

영화 쪽도 분위기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영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된 3D 영화는 36편으로 전년 대비 20% 줄었다. 영국에서도 3D 영화 점유율은 감소 추세다. 2010년 전체 24%에 달하던 3D 영화 점유율은 2011년 20%, 2012년 18%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올 상반기와 지난해 상반기 외국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었던 ‘어벤져스’와 ‘아이언맨3’도 3D 버전에선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점유율이 각각 20%, 11%에 불과했다. 3D 영화의 평균 관람률은 30% 안팎. 지난해 일반 영화 관람률이 65% 정도였던 데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3D 영화의 침체 원인은 3D TV와는 조금 다르다. 제작사들이 3D 영화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봐야 작품성이 없으면 소비자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관람료가 일반 영화의 1.5배에 달하는 데다 3D로 보기에 적합한 장르와 콘텐츠가 비교적 한정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관객이 선택하지 않으니 굳이 일반 영화보다 비싼 돈을 들여 3D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3D는 입체감과 원근감, 임장감(관객이 영화 속 현장 안에 있는 느낌)이 뛰어난 게 특징인데 이런 장점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적합하다. 2000년대 중반에도 ‘크리스마스의 악몽’ ‘베오울프’ 같은 영화들이 3D로 제작됐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아바타’만 인기를 끈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며 “블록버스터라도 스토리 라인이 탄탄해야만 대박 흥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만한 영화는 원래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콘텐츠가 좋은 3D 영화는 흥행 실적이 괜찮은 편이다. 요즘 영화업계가 ‘명작’으로 인정받는 고전 영화들을 중심으로 3D로 재개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11년 12월 ‘라이온킹’을 필두로 ‘타이타닉’ ‘스타워즈’ ‘레옹’ ‘쥬라기 공원’ 등이 잇달아 3D로 변환돼 재개봉됐는데 이들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개봉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도 3D 관람률이 80%에 육박했다. 이처럼 좋은 콘텐츠만 확보되면 3D도 얼마든지 시장성이 있다는 게 3D 업계의 희망 섞인 주장이다.

설명환 한국리얼3D콘텐츠제작자협회 전문위원은 “2D 영화를 3D로 변환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포토샵으로 인물의 윤곽을 따서 배경과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해 제작비도 적잖게 든다. 그럼에도 3D로 재개봉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영화가 없다는 건 3D 영화의 시장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3D에 이어 등장한 4D 영화도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D나 3D가 관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키는 ‘영상 기술’이었다면 4D는 특수 장치를 통해 후각과 촉각까지 느끼게 해주는 ‘융합 기술’. 영화 장면에 따라 의자가 움직이거나 바람이 불고, 물이 튀고, 향기가 나는 효과를 통해 관객이 영화 속 공간에 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그러나 4D는 제반 장비가 필요하단 점에서 3D에 비해 보급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일단 진동의자 무게만 1t이 넘어 일반 건물에선 설치가 어렵다. 건물 설계 단계부터 하중을 견딜 수 있는 프레임과 특수 시멘트를 이용해 보강 공사를 해야 한다. 또 4D의 장점을 살리려면 진동이나 수증기 같은 특수효과를 자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영상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업계 관계자는 “4D는 ‘B2B(기업 간 비즈니스)’로만 전개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것도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체험관, 박물관 정도에서만 활용 가능해 3D보다 시장이 훨씬 작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그나마 3D 사업에 한 가닥 희망을 거는 모양새다. TV는 그간 컬러 TV 이후 선명도가 높아지는 식으로만 발전해왔는데 UHD TV(울트라HD TV)부터는 선명도 차이가 거의 구분되지 않아 산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 TV의 최종 발달 단계로 꼽히는 홀로그램 TV(허공에 영상이 뜨는 방식)는 아직 기술이 요원하므로 그 중간 단계로서 3D TV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용안경 없이 3D TV를 감상할 수 있는 ‘무안경 방식’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명희 동서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는 “3D TV는 아직 과도기 단계일 뿐, 사양산업은 아니다. 국내 영화 배급 시장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이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y 100명 2013. 7. 22.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