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4사에 유리한 재승인 심사기준 안이 공개됐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가 구성한 재승인 연구반은 ‘승인시의 승인조건 이행 여부’를 비계량 평가항목으로 분류한 안을 제시했다. 방통위는 종편 사업자를 만난 뒤 최종안을 결정할 예정이고, 종편은 읍소 전략과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조건부 재승인’이라는 종편 생명 연장 프로젝트가 본격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구반 총괄책임자인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가 5일 오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종합편성·보도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 재승인 세부심사기준(안)’ 전문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재승인 세부기준안의 골자는 승인조건 이행 여부, 방송 제작계획 적정성 등 대부분을 비계량으로 평가하겠다는 것.

“지상파 재허가 기준을 바탕으로 고민했다”는 연구반의 안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와 재정 및 기술적 능력 일부만을 계량평가로 분류했다. 이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항목과 대부분 겹치는데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의 적절성 등 8개 항목이 유사하거나 같다.

연구반은 향후 계획보다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에 비중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종편의 성적은 초라하다. 방통위는 4개 사업자의 2012년도 이행실적을 평가한 뒤 종편 4사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도 교수는 종편 4사의 운영성과를 △콘텐츠 투자 저조 △방송의 다양성 확보 미흡 △편중된 방송편성 실태 △미미한 단기시장 성과 등으로 설명했다.

연구반이 내놓은 안은 지상파 재허가 심사항목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 기준에 ‘허가시 부과된 조건, 권고 이행여부 등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계량평가한다. 그런데 종편은 비계량평가로 돼 있다. 이밖에도 ‘시청자의 권익 보호’ 항목이 빠져 있다.

   
▲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항목과 방통위 연구반이 내놓은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항목. 도준호 교수 발제문에서 재구성.
 
재승인은 최초 승인·허가보다 ‘정치적 부담’이 더 큰 작업이라는 것이 유의선 숙명여대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연구반이 내놓은 안은 승인 당시 심사항목과 대부분 유사하다. 도준호 교수는 “재승인에 대한 부담이 있어 승인 당시 세부심사항목 중 뺀 항목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승인 당시 심사항목이 대부분 유지되고, 커트라인만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종편 재승임 심사에 지상파 기준을 적용한다면 재승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진행될 수 있다. 2010년 9월 방통위가 제시한 ‘종편 승인 기본 계획’에 따르면 전체 총점의 80% 이상, 심사사항별 총점의 70% 이상으로 최저점수로 하는 등 ‘과락’ 제도가 있었다. 반면 지상파 재허가는 총점 650점 이상이면 통과다. 심사사항별 과락 기준도 40%로 낮다.

특히 도준호 교수는 “(이대로라면) 엄격한 조건을 붙인 재승인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방통위 연구반은 세부심사기준을 최종 확정하기 전 종편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방통위의 최종 심사기준은 사업자 의견수렴 뒤 더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조건부 재승인’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인데도 심사를 앞둔 종편은 불안하다.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에 비중을 두겠다”는 연구반 입장에 ‘650점에 미달할 수 있다’는 게 종편의 속사정으로 보인다. 종편은 출범 전후 의무전송 지정, 지상파 인접 채널 배정, 광고 직접영업 한시 허용, 중간광고 허용, 완화한 편성 규제 적용, 방송통신발전기금 한시 면제 등 특혜는 받았지만 이행실적이 초라하다.

   
▲ 종합편성채널 4사와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뉴스Y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2012년도 콘텐츠 투자계획과 재방송 비율 그리고 이행실적. 도준호 교수 발제문에서 갈무리.
 
승인 조건으로만 따져볼 때 ‘낙제’에 가깝다. 종편은 방통위가 제시한 조건이나 자신의 사업계획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종편 4사는 2012년 콘텐츠에 총 7235억 원을 투자하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이중 47.4%인 3429억 원만 이행했다. 종편 4사의 지난해 재방송 비율 계획은 5.6%(JTBC), 23.6%(채널A), 26.8%(TV조선), 32.9%(MBN)이었으나 이행실적은 58.99%(JTBC), 56.2%(TV조선), 56.1%(채널A), 40%(MBN)다.

‘종합편성’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사업계획서와 다른 편성도 승인 조건을 어긴 것이 된다.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은 보도프로그램을 애초 계획보다 10%에서 30%를 추가로 편성했다. MBN의 2012년 보도프로 편성비율은 51.5%나 된다. 지난해 12월엔 64.7%나 됐다. “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라는 당초 정책 목표 달성에 미흡하다”고 도준호 교수는 지적했다.

   
▲ 지난해 6월과 12월 종합편성채널 4사의 편성 분석 자료. 도준호 교수 발제문에서 갈무리.
 
종편의 보도 공정성과 저널리즘에 대한 논란과 비판은 개국 초기부터 계속돼 왔다. 지난해 18대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종편 4사의 ‘방송심의규정 위반에 따른 제재’ 건수는 27건으로 지상파3사 TV(3건)보다 많았다. 특히 올해 TV조선과 채널A는 ‘광주민중항쟁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당시 “중국인이라 다행” 발언은 외교문제로 번졌다.

“배점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도 교수의 말에 토론회에 참석한 종편 관계자들은 ‘읍소’ 전략을 펼쳤다. MBN 박진성 정책기획부장은 “지난해 종편의 매출액은 지상파 대비 7% 정도”라며 “종편과 지상파를 비슷한 잣대를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현장에서 나름대로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고, 이런 부분을 심사에 반영하는 게 합리적인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도준호 교수는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를 강조하면서도 “사업계획서를 보면 대부분 사업자들이 최대 2개 사업자의 승인을 상정한 것 같다. 실제 4개사가 승인받았기 때문에 원래 것과 차질이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지성우 교수는 “지상파와 동일한 수준으로 심사하겠다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방통위를 그만두고 TV조선으로 옮긴 배경윤 전략기획실 부장은 토론회가 끝난 직후 도 교수에게 “계획서 낼 때 환경하고 실제 환경이 다르다는 것 알지 않느냐”며 “그래서 이행실적이 저조하다. 이행실적 배점을 높게 하면서 승인조건 심사항목도 따로 있으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점수가 많이 깎이게 된다. 650점을 넘을지 모르겠다. 우리도 부담스럽지만 방통위도 부담스러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배경윤 부장은 ‘사업계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환경이 달라서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사업계획서에서 약속한 선거방송 백서 발간·공개 등은 그것과 상관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 이행실적을 점검했고, 시정조치라는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고만 말했다.

   
▲ 5일 오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연구반 총괄책임자인 도준호 교수가 재승인 세부심사기준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모두 심사의 객관성을 위해 계량항목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성낙용 콘텐츠국장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계량평가를 20%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저널리즘의 기본인데 이를 확보할 방안을 평가에 추가해 종편 사업자에게 공적 책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애초 도입 목표였던 미디어융합, 방송 다양성, 콘텐츠와 유료방송 선순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종편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며 “특히 이행실적은 계량 평가가 가능하다. 방통위가 재승인 심사를 요식행위로 끝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양대 전범수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계량모델을 바탕으로 평가를 끌고 나가는 것이 객관적”이라며 “항목을 줄여서라도 계량화를 늘려 실질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크게 방송의 공익성과 콘텐츠투자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소유권과 퍼포먼스 위주의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by 100명 2013. 8. 6.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