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로 무장하고 헐크 다시 온다

기사입력 2008-06-08 20:46


[한겨레] ‘인크레더블…’ 다음주 세계 동시 개봉

블록버스터 새옷…‘나쁜 헐크’와 대결



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원조 미드 세대’에게 헐크는 티브이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로 익숙한 캐릭터다. 누군가 화를 돋우면 눈동자부터 초록색으로 바뀌며 괴력의 사나이로 돌변했던. 그 괴력으로 사람과 물건을 집어던지고 깨뜨리며 분풀이를 한 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 초라함이란. 당시 아이들은 헐크의 청바지가 찢어질 때 자신의 근육도 함께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곤 했다.


헐크가 다시 온다. 블록버스터로서의 단순 명쾌함과 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무장한 <인크레더블 헐크>가 오는 12일 세계 동시 개봉한다. 1962년 미국 마블 코믹스의 만화 <헐크>로 처음 존재를 알린 뒤 99년 474편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헐크는 스파이더맨과 함께 마블 코믹스 최고의 캐릭터로 군림했다. 2003년에는 대만 출신의 리안 감독이 영화 <헐크>를 만들었다. 에릭 바나와 제니퍼 코넬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리안 감독다운 예술적인 터치로 슬픈 분노의 히어로를 그려냈으나 흥행에서는 참패했다.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헐크가 등장할 정도로 충실했던 배경 설명을 관객들은 장광설로 받아들였다.

흥행을 위해서는 송두리째 바꿔야 했다. 속편 아닌 속편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블 코믹스가 영화 제작을 선언하며 설립한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직접 제작을 맡았고, 감독은 뤼크 베송 사단의 35살짜리 신예 루이 레테리에로 바뀌었다. 순한 양의 얼굴에서 분노로 달아오르는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주인공 브루스 배너 역에는 <파이트 클럽>과 <일루셔니스트>의 에드워드 노튼을 기용했고, 사랑하는 남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비련의 여인 베티 로스에는 <반지의 제왕>의 요정 리브 타일러를 캐스팅했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브라질의 한 빈민촌에서 시작한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이 열대우림의 숲속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배너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브라질의 음료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고장난 기계를 고치다 실수로 피 한방울이 음료수에 섞여 들어가고, 그의 소재를 파악한 미군 당국에 의해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편과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나쁜 헐크’ 어보미네이션의 등장이다. 러시아 출신의 특수요원으로 헐크를 추격하던 에밀 블론스키(팀 로스)는 헐크와 맞닥뜨린 뒤 그 거대한 힘을 동경해 선더볼트 장군(윌리엄 허트)에게 감마선을 쏘아달라고 스스로 부탁한다. 어보미네이션은 헐크보다 키가 60㎝나 크고 순발력과 속도도 훨씬 빠르다. 이 둘의 싸움이 영화가 자랑하는 절정이다.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변신 뒤의 헐크를 연기했던 루 페리그노는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경비원으로 깜짝 출연한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영화 데뷔작 <아이언맨>의 슈퍼 영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카메오로 나와 웃음을 끌어낸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리안 감독의 <헐크>는 명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가공할 점프력으로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고, 전투기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은 <인크레더블…>을 뛰어넘는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오른 <헐크>와 블록버스터로 새 옷을 입은 <인크레더블 헐크> 중 어느 작품에 손을 들어줄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관객 자신의 취향이다.
by 100명 2008. 6. 8.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