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천신만고 끝에 황금 주파수를 낙찰 받았다.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일 “KT가 당장 10월부터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해도 판도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KT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KT는 지난달 27일 끝난 LTE 주파수 경매에서 D2 블록을 9001억원에 확보해 당장 수도권부터 광대역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번 주파수 경매는 예상과 달리 싱겁게 끝났다. 성 연구원은 “경매 결과만 놓고 보면 KT가 LG유플러스를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주파수를 새로 받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해서 나오는 실적을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LG유플러스가 승자로 판단된다”는 이야기다. 성 연구원은 “SK텔레콤은 주파수 경매 결과와 실적 개선세 두 가지 모두를 합쳐서 생각해보면 3사 가운데 가장 좋다”고 분석했다.

KT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KT가 당장 10월부터 시작할 LTE 광대역 서비스와 이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시작한 LTE-A 서비스는 단말기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LTE 광대역 서비스는 기존 단말기 그대로 이론적으로 두 배 빠른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LTE-A 서비스는 단말기를 바꿔야 한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LTE 가입자 비중은 각각 45%와 60% 수준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단말기 할부금도 남아있고 위약금에 묶여 있는 상태다.

   
LTE 주파수 경매 이후 주파수 배분 상황.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대증권.
 
둘째, LTE 광대역과 LTE-A의 차별화 포인트도 모호하다. KT가 황금 주파수를 가져가는 조건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당장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지만 지방 광역시는 내년 3월부터, 나머지 지역은 내년 7월부터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제한이 붙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벌써부터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 광역시까지 커버리지를 넓히고 있다. 광대역 서비스가 더 좋다고 광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셋째, LTE의 이론상 속도는 75Mbps지만 실제로는 20~40Mbps 정도가 고작이다. 성 연구원은 “이 정도로도 대부분 이용자들은 큰 불편함이 없고 속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면서 “LTE-A 역시 이론적으로는 150Mbps까지 나오지만 실제로는 40~80Mbps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 연구원은 “애초에 LTE가 이미 보편화된 지금부터는 속도 경쟁을 가입자를 유치하는 마케팅 요소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재경 KTB투자증권 연구원도 “광대역 LTE나 LTE-A 서비스가 기존 LTE 대비 두 배 빠르다는 걸 제외하고는 차별화된 킬러 서비스가 없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번호이동 고객들은 LTE-A 기능이 탑재된 신규 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KT는 기존 LTE 폰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마케팅을 펼치겠지만 번호이동 가입자 유치보다는 자사 고객유지에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성 연구원은 “속도가 빨라지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해서 통신비 부담이 커질수도 있고 앞으로는 요금제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조금 지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KT의 광대역 서비스 마케팅이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KT는 LTE 비중이 40% 미만으로 가장 낮기 때문에 경쟁사들이 3G 가입자를 빼내기 위한 마케팅을 할 가능성이 높다. 3G 가입자의 유출을 막는 게 더 시급한 과제라는 이야기다.

   
KT 표현명 사장이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광대역 LTE-A 서비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 연구원은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실적 개선을 이어가겠지만 KT는 유선 매출 감소와 인터넷 ARPU 감소, IPTV 출혈 경쟁, 그리고 금융 자회사 실적 개선 속도 둔화 때문에 영업이익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딜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성 연구원은 “광대역 서비스로 가입자 이탈을 어느 정도는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 가입자가 급격히 증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통신 3사의 실적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원형운 동부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경매로 통신사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ARPU 대비 0.5~2.0% 수준이지만 실제로 LTE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연간 ARPU는 8~10% 가까이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상위 요금제로 갈아타는 가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10%의 헤비 유저를 제외하고도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월 1.3~1.5GB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 연구원은 저가 단말기 시장이 확대될 거라는 가정 아래 KT의 실적 개선에 무게를 뒀다. “KT의 경우 저조했던 번호이동 시장에서의 경쟁력 회복을 통해 LTE 도입 이후 이탈했던 가입자 회복이 기대된다”는 다소 상반된 분석이다. 단말기의 혁신이 둔화되는 가운데 고가형 LTE-A 단말기 보다는 기존 단말기를 재활용하거나 저가형 보급형 단말기로 수요가 옮겨간다면 KT가 혜택을 보게 될 거라는 전망이다.

시장의 반응이 엇갈리는 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 시장에서 LTE 광대역과 LTE-A 서비스의 차이가 가입자들에게 얼마나 다가올 것이냐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쪽은 상대적으로 뺏길 부분이 더 많은 KT가 불리하다고 보고 단말기 그대로 쓸 수 있는 광대역 서비스가 상당한 경쟁력 포인트가 될 거라고 보는 쪽은 KT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편 이석채 KT 회장의 거취도 업계 관심 사안이다. 최근 청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금은 때가 아니다, 주파수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장수의 명예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거부한 바 있다. 문제는 황금 주파수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사활을 걸고 마케팅 경쟁에 뛰어들겠지만 이미 경쟁의 룰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KT 입장에서는 주파수 배분 전략의 실패로 2G 서비스 종료가 늦어진 데다 LTE 도입이 늦은 후유증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황금 주파수를 확보한 것이 이 회장의 표현대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판도를 뒤바꾸기에는 부족할 거라는 냉소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통신 시장 전반이 혁신의 한계를 맞고 있는 가운데 광대역 서비스라는 마케팅 구호가 얼마나 먹혀드느냐에 KT의 명운이 걸려있는 상황이다.
by 100명 2013. 9. 4. 0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