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노동 문제는 어제오늘 불거진 사안이 아니다. 세상에 알려진 후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노동자 연쇄 사망 등 정도도 심각하다. 공공성을 내려놓고 사유화를 택한 후 '신자유주의 교과서'라는 말에 모자람이 없는 길을 걸어온 KT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프레시안>은 KT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이 문제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KT 100번 전화 상담원 이재찬(55) 씨. 8월에도 어김없이 회사로부터 '경고장'이 날아왔다.

"업무 해태 및 실적 부진은 사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성실의 의무 위반에 해당하며, 앞으로는 이러한 실적 부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주시길 엄중히 경고합니다."

벌써 20번째 경고장이다. 한때 KT 본사 마케팅 부서에서 차장으로 일했다는 이 씨는 지난 2011년 KT 자회사인 케이티스(KTis)의 전화 상담 부서로 사실상 '강제' 발령됐다. 이후 이 씨는 매달 진행된 22번의 실적 평가에서 간신히 두 번, 경고를 피해 갔다.

과거 사무직이던 50대 중반의 남성. 그런 그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담 절차 및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고, 전화 상담을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 씨는 '난청'이다. 어려서 중이염을 심하게 앓은 후 오른쪽 청력이 손상됐다. 지난 5월 청력 검사를 위해 찾은 병원에선 "좌측 청력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니, 청력 보호를 위해 장시간의 이어폰이나 헤드셋 사용을 자제"하라는 소견서를 내밀었다.

결국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불편한 몸은 무력감을, 벅찬 전화 상담 업무는 소진감을, 그리고 매달 차곡차곡 쌓이는 경고장은 분노를 키웠다. 지난달 28일 만난 이 씨는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고, 불면증이 심해졌다. 간신히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면 분통이 터져 다시 잠들 수 없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KT '난청' 직원은 어쩌다 콜센터 상담원이 됐나

'난청'인 이 씨는 어쩌다 콜센터 상담원이 됐을까. 1985년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 27세 나이로 입사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 사원으로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던 그다.

시작점은 2002년 KT의 민영화다. 민영화 후 KT는 수익 위주의 경영에 몰두한다. 우려했던 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조 탄압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 : "매년 수십 명 죽는 KT, 이대로 가면 더 많이 죽는다")

구조조정을 위한 한 방편은 '분사'였다. 2008년 KT는 고객 민원 처리(VOC) 업무를 협력사 네 곳(케이에스콜, 코스앤씨, 한국콜센터, 티엠월드)으로 외주하며, 직원 약 550명을 한꺼번에 전직시킨다. 겉으로는 공모 절차를 거쳐 희망자를 전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노동계는 '사표 쓰기 싫으면 외주사로 가라'는 종용이 횡행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누가 강제하지 않았는데도 자진해서 외주사로 전직한 직원도 있었다. 이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당시 외주사 전직은 명예퇴직 대상자를 주로 이뤄졌는데, 나는 (명퇴) 대상자도 아니었다"며 "여러 가지 복잡한 개인사가 있어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마당에, 회사가 협력사의 밝은 비전을 내세우니 믿고 옮겼다"고 말했다.

이 씨가 '믿은' 밝은 비전, 즉 KT가 내세운 밝은 비전은 이랬다. 2008년 전사에 내려진 '콜법인 전출 직원 공모' 문서를 보면, KT는 "KT가 존재하는 한 100번(전화 상담), CS(고객 서비스) 업무는 필요함에 따라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 확장을 통하여 국내 최대 컨텍센터 선도 기업으로 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기업임"이라고 협력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출 직원에게 분사 후 3년 고용을 보장하고, "3년 근무 후에도 능력과 업적에 따라 지속적으로 근무 가능"하며 "3년까지는 KT 급여의 70%±5% 수준으로 지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업무를 위탁 운영함에 따라 KT의 경제의 규모 실현이 가능하게 되어 직원 위상이 동반 상승 예상되며, 다양한 추가 진출 영역에 따른 개인 역량 발휘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 2008년 KT가 전사에 내린 '콜 법인 전출 직원 공모' 문서의 일부. 당시 KT는 전출 대상자들에게 3년 고용이 보장되며 능력과 실적에 따라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KT가 존재하는 한 협력사로 넘긴 VOC 업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일부 직원은 자진해서 전출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KT는 직원들을 협력사로 내보내고 3년 후 VOC 업무를 협력사에서 회수했다. 이에 따라 전출 직원 중 80퍼센트가량이 사직서를 썼고 나머지는 콜센터 직원으로 사실상 '강등' 됐다. ⓒ프레시안

3년 지나자 VOC 업무 회수, "KT가 사기 쳤다"

외주사로 자진해 전출했거나 또는 전출해야 했던 직원들은 KT의 약속대로 일단 3년간은 고용을 보장받았다. 협력사의 복리 후생 수준을 본사 수준으로 점차 맞춰주겠다고 한 KT의 당초 약속도 믿고 기다렸다. 구조조정이 몰아치는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기보다, 조금 적은 급여나마 외주사에서 안정적으로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KT는 분사 3년이 지나자마자 이들에게 맡겼던 VOC 업무를 본사로 회수해간다. 이 씨를 포함한 전출자들이 일하던 협력사들은 그 사이 한국인포서비스(KOIS)·한국인포데이타(KOID)와 통합돼 각각 케이티스(KTis)·케이티씨에스(KTcs)라는 KT 자회사로 출범한 상태였다.

VOC 업무가 본사로 회수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장은 술렁였다. 이 씨는 "회사 내에서 (필요 없어진 인력을) '내보내야 되겠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며 "현장이 술렁이며 위기의식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 사기 아니였냐는 이야기들도 흘러나왔다"고 회고했다.

이 씨는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 가 사직서를 쓰라는 재촉이 시작됐다"며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직원들은 집에서 먼 지역으로 발령되거나, 급여가 절반 이상 깎이는 '100콜센터'로 전보 처분된다는 계획이 나왔다"고 말했다.

결국 최초 전출자 500여 명 가운데 4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 씨는 "자연 퇴사자도 물론 있었지만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사직 강요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며 "300만~400만 원씩 월급을 받다가 어느 날 150만 원 정도를 받으며 콜센터에서 일하라는데 사직 종용이 아니면 뭐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도 직장 다니다가 관두면 취직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나이 먹은 우리가 일자리를 잃으면 누가 받아주겠느냐"며 "그때야 '(전직을 선택한) 내가 어리석었구나' 깨달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도 말했다.

"KT가 기획한 위장 정리해고"

전화 상담원으로 직무가 전환된 후 이 씨 등은 '100콜센터로 전보한 것은 부당한 직급 강등이자 KT가 기획한 위장 정리해고'라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KT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등을 걸었다. 이들은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고용한 사람은 무기 계약직으로 인정,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회사는 물론 재판부도 결국 이들을 외면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41부(재판장 정창근)는 지난 4월, 이 씨를 포함한 79명이 KT와 자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을 맡았던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원고 주장을 재판부가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나는 파업도 몰랐고 노조도 몰랐다. 대기업 관리자였다. 주변에서 파업하고 기자회견 하자고 할 때도, 시끄럽게 하지 말고 법에 호소하자는 쪽이었다"며 "그런데 믿었던 사법부와 노동부는 우리의 억울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KT 이석채 회장. 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이석채 회장이 지휘하는 KT에선 실적 압박과 극악한 노무 관리로 매년 수십 명의 자살 및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연합뉴스

자살·퇴직하는 동료들 보며 커진 비애와 배신감

이 씨는 콜센터로 전직되던 2011년 세워진 케이티스 노조에서 지부장을 맡았다. 또 다른 자회사인 케이티씨에스 지부장을 맡은 사람은 고(故) 전해남 씨였다. 전 씨는 이 씨와 같은 해인 1985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입사해, 2008년 분사 때 이 씨와 마찬가지로 협력사로 전직했고 2011년 다시 콜센터 사원으로 직무 전환됐다.

전 씨는 콜센터 일을 시작하기 3일 전 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 공주-부여 방면 도로변의 전소한 차에서 발견된 전 씨에겐 세 딸이 있었다. 이 씨는 "사고(자살) 터지기 일주일 전에 그 사람과 통화했었다"며 "'이거(콜센터 발령) 어떻게 해야 하냐며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 수백 명이 사직서를 쓰고 떠나고,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어 상황을 개선해보려던 동료가 자살한 후, 이 씨는 참기 어려운 비애와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애초 협력사 전출 자체가 '사기'였다"며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고객들, "젊은 사람 좀 바꿔 달라" 요청하기도…'우울증'으로 산재 신청

콜센터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이 씨는 "콜센터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KT만큼 상담하기 까다로운 곳이 없다는 말이 있다"며 "한 동료는 '경고장 한 번 안 받아보겠다'며 정말 열심히 해봤는데 결국 하루 할당량 60개를 못 채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사무실은 닭장 같아요"라며 "건물 한 층에 40여 개 칸막이 책상이 있고, 거기에 내 나이 때 남자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며 쓰게 웃었다. 그는 "상상하면 웃기지요?"라며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들이 와이셔츠 입고 앉아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목소리 듣고서 'KT가 맞느냐', '젊은 사람 좀 바꿔줄 수 없느냐'라는 말도 한다"고 말했다.

▲ 이재찬 씨가 8월에 받은 20번째 경고장. ⓒ프레시안
이 씨가 일하는 지사에서 8월에 경고장을 받은 사람은 총 41명. 그는 "우리 사무실 사람들, 전부 다 받았다. 거의 매달 그렇다"며 "다만 경고장에 새로운 문장이 추가됐다. 'KTis 이미지 훼손 및 유·무형의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경고 문장"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 어느 언론과 인터뷰한 걸 보고 이러나 봐요"라고 그는 말했다.

이 씨는 7월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회사가 약속과 달리 경력과 건강 상태(난청)에도 적합하지 않은 콜센터 일을 시키고 경고장을 끊임없이 보내 우울증이 생겼다"고 그는 신청서에 적었다. 또 이 씨와 동료 54명은 7월 8일 항소하고 사법부의 재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씨는 "경고장이 계속 쌓이는데 이상하게도 회사가 징계를 안 하고 있다"며 "이 경고장이 언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겠다. KT보다 법원이 늦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KT "위장 정리해고 아니다"…KTis "하루 60콜은 응대 가능 수준"

한편, 케이티스 측은 8월 30일 통화에서 "실제 징계로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114콜센터는 하루 응대 수가 800개에 이른다"며 "하루 60콜 응대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KT 측은 "2008년 당시 '협력 직원 3년직 계약직'으로 전출자들과 합의 후 일이 진행됐고, 그 기간이 만료돼 자회사 지시에 따라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으므로 위장 정리해고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자회사 경영 상황에 KT가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경고장 발송은 KT와 상관없이 자회사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by 100명 2013. 9. 4. 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