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CEO리스크'... 기업경쟁력 갉아먹어


【서울=뉴시스】정옥주 기자 = "매번 정권 초마다 발생하는 정부의 인사개입(낙하산 인사)이 'CEO 리스크' 악순환의 원흉이다."

"민간기업의 경영자에 결격 사유가 있으면 주주총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맞지 않느냐. 임명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청와대가 CEO의 거취를 결정한다면, 도대체 주주들은 왜 존재하는 것이냐."

6일 이석채 KT 회장에 이어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사퇴설이 불거지면서 재계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이날 일부 언론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 회장이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길을 택하겠다'며 사임 의사를 알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포스코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강력 부인하고 있는 상황. 포스코 관계자는 "사의 표명은 사실이 아니다"며 "정 회장은 오늘도 정상적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의 거취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끊임없이 불거져 왔다. 임기는 두 회장 모두 2015년 3월까지로 1년 반이나 남아 있지만, 그동안의 전례상 새 정부와 함께 포스코와 KT에도 '새 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세청은 이례적으로 3년만에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고, 정 회장과 이 회장은 7~11일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에서도 빠져 사퇴 압박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09년 초 이구택 포스코 회장도 이명박 정부의 퇴진 압력설에 시달리며 세무조사 로비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난 전례도 있다.

재계는 정권 교체 시기마다 발생하는 이러한 '잡음'의 배경에 '낙하산 인사'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번 퇴진 압박설의 주인공인 정준양 회장과 이석채 회장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 회장의 선임 배경에 '영포라인(경북 영일, 포항 출신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줄곧 제기됐고, TK(대구 경북)출신인 이 회장도 같은 의혹을 받았다.

재계가 더욱 우려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권교체기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국내 최대 민영화기업인 포스코와 KT에 대한 '근거없는 흔들기'가 향후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에 암초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퇴진 압박설의) 사실유무를 떠나 최고경영진에 대한 근거없는 흔들기가 한 기업의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경영진에 대한 불안감은 구성원들의 사기저하, 업무태만을 넘어 전반적인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KT는 이석채 회장이 2009년 1월 취임한 후 KT-KTF의 합병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도입해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BC카드, 스카이라이프, KT렌탈 등 사업 영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그 '약발'이 서서히 떨어지는 모습이다.

KT의 올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3717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순이익은 23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4% 줄었다. 이 조차도 미디어, 렌탈, 금융, 부동산 등 비통신 부문이 선방한 덕분이었다.

더욱이 KT는 7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경영진 흔들기'가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포항제철소, 7월엔 포스코엠텍 영월 공장에서 연이어 안전 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양경찰청 초계기 도입 사업 탈세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진행한 계열사 확장 작업은 포스코 전체의 재무상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초래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포스코와 KT의 CEO 리스크는 민간시장 참여자들에게 부정적인 시그널을 줘 기업효율성 악화는 물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성과평과와 인선 문제는 CEO가 시장 내에서 건전하게 한 경영활동을 통해 결정돼야 하며, 이에 따라 연임 여부는 주주 및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박 대통령은 이전 정부 시절 제기된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 적이 있는 만큼 낙하산 인사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5년 주기로 발생하는 CEO 리스크가 이번에도 불거져 잘못된 관행을 뜯어 고치겠다는 새 정부의 선언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새 정부가 원칙을 지켜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현명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6. 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