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 연남동에 사는 박모씨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케이블TV 셋톱박스에 대한 불만 글을 올렸다. 박씨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스카이라이프를 신청했는데 셋톱박스를 설치한 이후 자막방송이 나오지 않아 청각장애인인 어머니가 TV 시청을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처럼 셋톱박스 설치 이후 자막방송을 볼 수 없다는 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대부분 가정에 설치돼 있는 셋톱박스는 자막방송 기능이 지원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TV 시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체들은 자막방송이 지원되는 셋톱박스를 올해 뒤늦게 개발해 보급하고 있지만 홍보가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셋톱박스가 따로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업체 담당자도 많아 문의를 하더라도 정확한 안내를 받기 어렵다.

통상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에서 송출하는 방송신호에는 영상, 음성, 데이터 외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케이블TV나 IPTV 같은 유료방송에서 이 신호를 받아 셋톱박스를 통해 재송신하는 과정에서 영상과 음성 신호만 자체 규격에 맞게 바꿔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셋톱박스를 거치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유료방송을 시청하는 가구는 전체의 87.3%(1513만 가구)다. 이 중 60.9%인 921만 가구가 셋톱박스로 유료방송을 보고 있다.

900만명이 넘는 아날로그 케이블방송 시청자들도 자막방송에서 소외돼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디지털 신호로 자막을 송출하면서 아날로그 TV에서는 자막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자막방송을 내보내는 비율도 천차만별이다. 지상파 방송3사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00% 자막방송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아직 전체 프로그램의 30% 정도만 자막방송을 만든다. 특히 연합뉴스TV는 자막방송 비율이 8.6%에 그쳤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자막방송에 의지해 TV를 시청하는 청각장애인은 최대 35만명으로 추정된다”며 “정부와 관계 기관은 자막방송 시청이 가능한 셋톱박스 보급에 힘써야 하고 각 방송사도 자막방송 제작 비율을 높여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10. 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