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불거진 CEO 교체론.. ‘관행’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두 회사의 경우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정권 임기와 같으려니 한다. 잘못된 관행이지만 늘 그래왔지 않나. 그래서 시장에서는 포스코와 KT의 CEO 리스크를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로 보고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을 둘러싼 '사퇴압력설'에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처럼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오히려 사퇴 여부를 놓고 정부와 당사자가 옥신각신 장기간 시비를 벌이게 되면 회사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인식도 있다"고 소개했다. 현 정부가 또다시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과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수장에 오른 사람이 교체 요구에 새삼스레 반발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넘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포스코와 KT의 CEO 교체설이 파다해지고 있다. 역대 정부는 초기에 두 기업 CEO를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갈아치워왔다. 이번에도 청와대에서 우회적으로 사퇴 압력을 넣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청와대는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펄쩍 뛰고, 두 CEO는 "아직은 물러날 때가 아니다"라며 맞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정부가 두 사람을 압박하고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박근혜 대통령 중국 방문 때 국빈만찬과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두 사람이 제외된 것이 그렇다. 포스코는 최근 세무조사까지 받게 됐다. KT는 흔들기성 루머가 안팎에서 무성해졌다. 오죽하면 이 회장이 사내방송에서 "집이 무너져가는데 회사를 중상모략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나가라고 걷어차야 한다"고 경고했을까.

정부와 당사자들이 사퇴설을 강력히 부인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최근 나타나는 일련의 모습이 과거의 판박이라 그렇다. 우회적인 사퇴 압박이 안 먹히면 CEO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확산과 집단 따돌림, 흔들기를 거쳐 급기야는 비리 등에 대한 사정까지 이르는 과정 말이다. 포스코의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전 회장이나 KT의 남중수 전 사장 등이 정권 초기에 그렇게 사퇴했다.

공기업이던 포스코와 KT는 각각 2000년, 2002년 완전 민영화됐고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다. 민영화된 지 10년도 넘은 기업의 인사를 정부가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당연히 명분이 없다. 혹자는 제철과 통신이 국가기간산업이라 정부가 간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기업은 이제 독점은커녕 다른 민간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상황이라 이 또한 억지다. 그저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하는 식의 '관행'밖에는 내세울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관행이 십수년간 통한 것은 회사의 지배주주, 즉 주인이 없는 탓이다. 두 회사가 정권의 '전리품' 취급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외풍에 휘둘리는 포스코와 KT에 죄가 있다면 두 가지다. 과거 공기업이었고 지금은 주인이 없는 죄 그리고 과거부터 정권이 점지한 CEO가 회사를 이어받은 죄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원죄라고나 할까. 포스코 정 회장과 KT 이 회장의 경영능력과 실적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이는 사퇴론의 본질이 아니다. 이들의 진짜 약점은 과거 정부가 앉힌 '낙하산 인사'라는 사실이다. "과거 정부가 그랬듯 새 정부도 국정철학을 공유할 새 사람을 앉히겠다는데 뭔 소리냐" 하면 적어도 두 사람은 궁색해진다.

두 회사의 고질적인 CEO 리스크는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때마다 CEO가 바뀌니 경영의 안정성, 연속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관행이란 이름 아래 계속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 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비정상의 정상화'도 강조했다. 포스코와 KT의 경우 1년 반 남은 두 사람의 임기를 지켜주고 그다음 이사회와 주총에서 CEO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정상이다.

by 100명 2013. 9. 13. 0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