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 귀하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기사입력 2008-06-08 09:03

강우석 감독, 귀하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서울=뉴시스】

◇이문원의 문화비평

‘한국의 스필버그’ 강우석 감독이 돌아왔다. 여름 영화 시장의 많지 않은 한국영화 승부수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서다. 1,2편 각각 300만,390만 관객 동원작 속편이라 기대치가 유난히 크다. ‘강철중’이 성공하면 ‘놈놈놈’으로 자연스레 한국영화 붐이 이어질 수 있어 그 역할이 꽤나 중차대하기도 하다.

어쩌다보니 다시 한 번 ‘한국영화 구세주’ 역할을 떠맡게 된 강우석은, 사실 한국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도 구세주 역할을 맡은 일이 있다. 그가 커리어를 막 열어가던 1980년대 후반~1990대 초반, 강우석은 한국영화의 희망 그 자체였다.

그 당시, 강우석은 한국 영화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영화 감독’임을 자랑스레 내건 인물이었다. 팔리는 영화, 재미있는 영화만 만들겠다 외치고 다녔다. 지금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당시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싸구려 에로영화만 줄창 찍어대면서도 모두들 ‘한 예술 한다’고 떠들고 다니던 때다.

그런 그에게 환호를 보낸 이들은 많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장으로 임명된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1993년 발간된 저서 ‘강한섭의 영화이야기’에서 그는 평소 강우석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자신이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강우석이 내뱉은 한 마디에 감동받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영화계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뛰어난 작가가 아니라, 극장을 떠난 두 명의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호칭은 이때쯤 붙여졌다. 뚜렷한 흥행성공작은 1989년 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단 한 편뿐이었지만, 그의 ‘방향성’이 스필버그에 견줄 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강우석은 강한섭을 필두로 한 비평계의 지지와 영화팬들의 관심 속에 진짜 ‘한국의 스필버그’가 되어갔다.

1992년 ‘미스터 맘마’ 이후 일련의 영화들이 모두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시네마서비스를 맡게 됐다. 한 영화 주간지가 선정하는 한국영화 파워 리스트 1위 자리를 수년째 꿰찼다. 그는 ‘한국영화 상업화’의 선봉장이 되어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여기서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의 스필버그’ 칭호는 철저히 그의 방향성과 그 방향성을 실체화시킨 사업수완 덕택에 유지됐다. 그렇다면 영화감독으로서의 강우석은? 사실 강우석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아니었다. 처음부터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플롯구성에 대한 이해가 미진하고, 대사구성이 특히 심각하다. 연출은 불필요한 오버액션과 해선 안 될 비약이 넘실댄다. 화면을 차곡차곡 채워 넣을 역량이 부족해 왠지 화면 전체가 텅 빈 느낌이 든다. 편집도 빈틈이 너무 많아 공허한 헛바퀴를 자주 돈다.

능란한 배우들을 기용해 많은 부분이 커버되긴 해도, 배우를 잘못 만나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그리고 이 모든 불안요소가 지난 20여 년 간 조금도 보완·수정된 일이 없다. 그는 영원히 ‘마인드만 스필버그’다. 요즘처럼 재기 넘치는 테크니션이 넘쳐나는 때에는 더욱 비교가 돼, 그의 신작은 언제부턴가 시대착오적인 골동품 냄새를 짙게 풍겼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의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한 번 휘청거린 후, 4년 만에 감독직 복귀한 ‘공공의 적’부터 그의 영화는 히트 행진을 기록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노골적으로 ‘낡은 영화’가 되어가는 데도 말이다. 강우석 치고는 성적이 신통찮았다던 전작 ‘한반도’마저도 380만 관객을 넘겼다.

사실 강우석이 한국영화사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의 ‘못 만들었음에도 팔 수 있는 비결’이 현재 한국 상업영화 구조에 있어 결정적 힌트를 줬고, 아직까지도 현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강우석 영화는 한국 영화계를 한 번 들었다 놓은 사회적 대의 마케팅의 효시인 것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사회파적 소재를 지니고 있었다. 농촌총각 결혼 문제, 대학입시 문제, 실직자 문제, 싱글대디 문제, 경찰비리 문제, 검찰 문제, 일제청산 문제 등 끝이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가능한 단순화시켜 명쾌한 흑백논리 엔터테인먼트로 당의를 입혔다.

어찌 보면 한국 관객의 상업영화 갈증과 지속적인 국지현실 반영 요구를 미리 파악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우석 영화의 기초는 사실 베껴가기 쉬웠다. 그보다 더 나은 퀄리티 영화로 소화해낸 경우도 많았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 르네상스 개막과 함께 밀려나온 신세대 작가군은 강우석을 대체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강우석은 여기서도 살아남았다. 사회적 대의 마케팅을 시도해 영화 외적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강우석은 ‘재미있는 영화’ ‘팔리는 영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자기 영화가 지닌 사회이슈적 요소에 집중해 열변했다. 장기 경제불황으로 온 국민이 허덕일 무렵 계급갈등 논리를 부각시켰고, 이후 북파공작원 문제, 항일 애국주의 등을 내세웠다. 이른바 ‘문제적 감독’으로 거듭나길 원했다.

이를 더 자극하기 위해 딱히 영화 상 불필요한 요소까지도 우겨넣었다. ‘실미도’의 인민군가 장면 등이 한 예다. 물론 정말 강우석이 상업영화 마인드를 져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강화됐다 봐야한다. 그렇게 해야 장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적 영화’가 뜨게 되는 장기 경제불황 심리를 꿰뚫었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도 마찬가지다. 애초 10대 조직폭력 문제를 띄울 생각이었으나 만만치 않자, 영화 속에 집어넣은 광우병 소고기 대사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강우석은 이런 점에서 한국의 스필버그라기보다 한국의 올리버 스톤에 가깝다. 사회의 어떤 부분을 다루고, 부각시켜야 팔리는 지를 알뿐이다.

물론 이런 방향성도 있을 수 있다. 어찌됐건 그런 방식이 계속 먹혀 한국영화 흥행이 이어진다면 고마운 일이다. 국지적 상업영화 특색쯤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단적으로 말해, 강우석식의-혹은 선배격인 올리버 스톤식의-‘이슈 띄우기’ 마케팅은 이제 낡았다. 강우석의 영화 만들기 그 자체만큼이나 낡았다.

사실상 사회적 대의 마케팅은 점차 불씨가 꺼져가고 있다. ‘디워’ 논쟁 이후 대중이 이에 염증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더 큰 요소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대중여론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현 시점 한국은 ‘이슈 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거창한 이슈들이 쓸고 지나가며, 타이밍이 맞으면 거대 이슈로 탈바꿈하고, 곧바로 다시 대체된다.

대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슈에 비해 영화가 억지로 끌어내는 이슈는 빛이 바래게 된다. 언로(言路)의 확장은 영화 마케팅의 ‘깃발형’ 이슈 만들기를 퇴색시키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강우석에 대한 평가, 강우석식 한국영화 살리기 구호는 이제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두 명의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동원되는 갖가지 수단이 아니다. 한 명의 뛰어난 작가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만큼이나 완성도 높고 만족도 높다는 사실을 입증시킬 뛰어난 장인들이다. 이제 대중은 얄팍한 마케팅 수단들에 점차 지쳐가고 있다. 강우석식 사고에 지쳐가고 있다.

강우석은 분명 한국영화사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를 빼놓고선 한국영화 르네상스도, 한국영화 점유율 60%의 기적도 설명이 안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강우석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야지, 선봉장으로 나설 존재는 아니게 됐다. 그리고 그쯤으로도, 한 명의 영화인으로서 역할은 이미 충분했다.
by 100명 2008. 6. 8. 1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