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민영기업' 포스코와 KT가 또 '외풍'에 휩싸여 흔들리고 있다. '공기업'이란 꼬리표를 뗀 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근거 없는 흔들기'는 여전하다. 끊이지 않는 퇴진 압박설에 수장들의 주름은 펴질 줄 모른다. 정권교체기마다 하릴없는 정부의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악순환. 그 고리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걸까?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우)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우)


 

 


지난 6일 일부 언론매체가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청와대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 회장이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길을 택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서 후임 회장에 포스코 외부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섣부른 관측까지 나왔다. 전임 이구택 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운 후 작년 3월 연임에 성공한 정 회장의 임기는 2015년 3월까지로 아직 1년 6개월 가량 남아 있는 상태. 정 회장은 후임회장이 선임될 때까지는 자리를 지킬 것이란 근거 없는 설도 돌았다.

임기 1년 6개월
지킬까? 밀릴까?

정 회장은 특히 지난달 청와대 측으로부터 '조기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받고 거취를 고심하고 있다는 소문에 휘말렸다. 지난 3일 국세청이 포스코에 대해 전격적이고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한 데 대해 재계에서 '정 회장 사퇴 압박용'이란 해석을 덧붙인 것도 같은 이유다.

정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정 회장이 이미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포스코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더이상 버티는 것이 개인이나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자진사퇴를 택할 것이란 얘기도 돌고 있다. 

이와 관련 포스코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펄쩍 뛰었다. 포스코 측은 "정 회장이 청와대나 정부에 사의를 밝힌 사실이 없다"며 "(6일자) 해당언론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고 반박했다. 또한 "정 회장은 다음달 세계철강협회 총회에서 차기 협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며 "현 시점에서 거취와 관련된 오보가 나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석채 KT 회장도 지난달 29일 청와대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았다는 소문에 휘말렸다. 이 회장의 임기도 오는 2015년 3월까지로 1년 반 정도 남은 상태다. 이날 한 언론은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제3자를 통해 이 회장에게 '임기와 관련 없이 조기 사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포스코, 3년 만의 특별 세무조사 추측 무성
'사퇴종용설' 이석채 KT 회장 거취는?

이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주파수 경매가 진행 중인 데다 장수의 명예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거부했다. 청와대도 "조원동 경제수석에게 확인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며 해명했다.

이처럼 외압설이 번번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나면서 재계에서는 '우회적인 사퇴압박-언론 흘리기-사정'으로 이어지는 '인사외풍'의 전형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포스코는 지난 3일부터 국세청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날 오전 경북 포항제철소(29명)와 전남 광양제철소(19명),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29명) 등 총 77명의 인력을 투입해 세무조사 자료를 확보했다. 포스코가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2010년 이후 3년 만. 포스코 관계자는 "국세청에서 정기 세무조사라고 알려왔다"며 "통상적인 조사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포스코 본사를 관할하는 대구지방국세청 외 서울지방국세청 인원이 조사에 투입된 점 ▲서울청에서 나간 조사팀은 일반적인 정기조사를 담당하는 조사1국 소속이 아닌 점 ▲사전예고가 없었던 점 ▲임원급 사무실에서까지 자료를 제출받은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이번 세무조사가 예사롭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정 회장을 흔들기 위함이거나 종국엔 자진사퇴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이란 것이다.

'외압설' 사실무근?
전형적 '인사외풍'!

세무조사에 앞서 정부는 그동안 포스코와 '거리두기'를 해왔다. 정 회장은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베트남 방문 동행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빠졌으며,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10대그룹 총수 간담회 참석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만찬 초청자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이석채 KT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 박 대통령의 지난 5월 방미 경제사절단의 초청장을 받지 못했고, 6월 방중 때는 포함됐지만 국빈만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서 KT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의 'MB색채 지우기'도 정 회장과 이 회장을 압박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은 MB정부 시절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순수 민간기업인데
인사권은 정부가?

정 회장은 MB정부  실세그룹이었던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과 손잡고 CEO에 올랐다는 꼬리표가 아직까지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으며 TK(대구·경북) 출신인 이 회장도 비슷한 의혹을 받았다. 이 회장은 특히 취임 이후 특정지역 출신과 정권에서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채우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75년 공채 8기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입사해 2004년 전무로 승진한 정 회장은 2006년 부사장, 2007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2008년 말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 회장은 2009년 임기를 1년 2개월 남기고 자진사퇴한 이구택 전 회장에 이어 포스코 7대 회장에 취임했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신화다.

포스코와 KT의 공통점은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이라는 점이다.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로 설립된 포스코는 1998년 민영화를 시작해 2000년 9월 완전 민영화가 됐다.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지만 지분율은 6.14% 수준이고 외국인 주주가 51.8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T는 공기업으로 있다가 2002년 정부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순수 민간기업이 됐다. 국민연금(8.65%), 미래에셋자산운용(4.99%), 자사주(6.6%), 우리사주(1.1%) 등으로 분산돼 사실상 지배주주는 없다.

그러나 포스코와 KT는 그동안 CEO 선임에서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포스코의 경우 박태준 초대 회장에 이은 2대 황경로 회장이 김영삼정부에서 1년 만에 밀려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회장은 김대중정부가 들어서자 유상부 회장으로 교체됐다. 그 후임인 이구택 회장은 MB정권이 들어서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정 회장으로 바뀌었다.

정권교체기마다 낙하산 논란…MB색깔 지우기?
정부 지분 0%, 민영기업 인사개입 악순환 반복

KT는 합병 전 KTF 조영주 사장에 이어 사장에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11월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며 자리를 떴고, 이후 이 회장이 사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 본인도 취임 당시 MB정권의 입김이 닿은 인선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해 자산규모로 포스코는 재계 6위(81조원), KT는 35조원으로 11위다. 포스코는 52개 계열사, KT는 54개 계열사를 각각 거느리고 있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의 청와대 외압설과 자진사퇴설이 불거지자 재계는 민영화된 기업에 대해 정부가 도 넘은 인사외압을 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갈 CEO의 거취가 정권의 입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다. 이와 관련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는 세계 철강 수요감소로 중대고비를 맞고 있고, KT는 LTE 주파수 권역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럴 때 인사외압은 기업 자율성을 크게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부의 정권교체기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국내 최대 민영화기업인 포스코와 KT에 대한 '근거 없는 흔들기'는 향후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에 암초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인사, 회장 선임해야

전문가들은 포스코와 KT의 독립경영을 위해서는 경영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KT는 회장 선임 절차를 보다 엄격히 정해 정부개입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며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뽑는 식의 시스템 개선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구시대적인 인사개입을 지양해야 한다"며 "양사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기능을 강화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전문성 있는 인사를 회장에 선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y 100명 2013. 9. 18.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