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의 전·현직 직원들이 올해에만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5년간 자살자는 23명이나 된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이들은 ‘회사의 부당한 대우’와 ‘강도 높은 인력퇴출 프로그램’의 희생양들이라는 증언이 많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 KT 비극의 행렬 (상) 그들은 왜

두 노동자의 자살

20년간 기계팀 우수 사원에서
느닷없는 영업직 인사 발령
F 성적표 받고 퇴사 권유받아

투신 직전 메모지에 ‘살려줘요’
회사선 “산재 입증 불가능”

강아무개씨(사망 당시 50살)는 공학도였다. 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공대 진학을 선택한 그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90년 6급 공채로 케이티(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입사했다. 2010년까지 20년간 주로 기계팀에서 일하며 전송시설 운용과 지원 업무를 맡았다. 1993년 회사에서 표창을 받고 1998년에는 사장이 주는 공로표창까지 받는 등 우수 사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우수 사원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2010년 7월 강씨는 갑작스레 현장에서 전화·인터넷 등을 개통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마케팅도 해야 했다. 케이티 서울 신촌지사에서 개통 일을 시작했다. 회사는 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잘 될 리 없었다. 결국 반년 만에 은평지사로 쫓기듯 옮겨갔다. 그의 취미는 바둑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기계를 다루던 그에게 영업은 더욱 힘들었다.

압박이 시작됐다. 회사 상사는 그에게 ‘회사를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실적 부진이 이유였다. 자존감이 무너졌다. 실적은 더욱 나빠졌고 악순환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2011년 강씨가 직접 출력해 보관해온 에이치알(HR·인력자원) 프로필 요약본을 보면 업무가 전환된 2010년 그가 받은 ‘개인성과’와 ‘역량평가’ 항목 점수는 ‘에프’(F)였다.

강씨는 일일보고 대상자가 됐다. 일거수일투족과 업무 성과를 매일 보고해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표를 쓰라는 압박이 이어지던 어느 날 강씨는 새로 나온 명함을 보고 놀랐다. 부서가 바뀌고 새로 신청한 명함에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가 틀리게 적혀 있었다. 다시 명함을 신청했지만 바로 잡히지 않았다. 강씨의 유족은 “영업을 하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도 틀리게 적힌 명함을 두 번이나 주는 것은 (회사를)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입에서 “퇴직하고 싶다”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목숨을 끊기 한 달 전인 2011년 6월이었다. 친척과 친구들에게 “핸드폰 좀 사달라” “인터넷을 개통하게 되면 연락 좀 달라”는 말을 힘겹게 꺼내고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 털어놨다. “나 오늘 또 지적받았어….”

그해 7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사표를 내고 차라리 운전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가족들은 응원했다. “주눅들지 말고 소신껏, 자신감 있게 일해요.” 처음으로 스마트폰 3대를 판 강씨는 토요일인 다음날에도 회사로 향했다. 오전에 운동을 하러 다녀온 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바로 그날 강씨는 회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집에서는 강씨의 근무 평정이 적힌 메모가 나왔다. 거기엔 “살려줘요”라고 쓰여 있었다. 싸늘하게 식은 그의 몸을 감싼 바지 주머니 속에서 두 번 접힌 에이포(A4) 용지도 나왔다. 홍보용 전단이었다. 갤럭시에스(S)2·아이폰4의 사진과 함께 각종 요금제가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 강씨가 직접 쓴 이름과 전화번호가 보였다.

경찰은 ‘직장에서 권고사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오던 중 회사 별관 5층 옥상에서 1층 바닥으로 투신했다’고 결론내렸다.

강씨가 세상을 떠난 뒤 케이티는 퇴직금 5000여만원과 사내 복지기금에서 마련한 1억원을 유족에게 줬다. 유족은 “고인이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사표를 쓰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케이티는 “업무 부실 등을 이유로 사직을 권한 적도 없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경고장을 보낸 일도 없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그해 10월 ‘업무의 급격한 변화와 스트레스 증가가 있다고 하나, 개인적인 특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소송을 포기했다. 케이티는 “공단이 요구하는 자료를 성실히 냈다. 공단에서 산재 승인이 나지 않은 것은 자살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뒤 2년이 흘렀다. 유족들은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케이티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강씨의 가족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회사에 다녔지만 죽음 뒤에 회사는 조용히 무마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23. 0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