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MB정부 공공기관 선진 방안따라


한수원 등 10~33% 인원 감축


업무과다에 노동자 자살하기도


"고참 운전원 공백이 부른 참극" 




피로 누적·숙련인력 부족 등 문제

원전 운영상의 안전 위협할 수도

"경제성 아닌 안전성 최우선해야"


"당장 발등의 불만 끄는 식이다 보니 적재적소에 숙련자가 배치될 수 있겠습니까."

부산 고리원자력 제2발전소 정비기술팀에서 일하는 한경철(가명·49)씨는 최근 몇년 새 현장 인력이 줄어들면서 '보이지 않게'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참 직원 20명가량으로 구성됐던 계통기술팀이 사라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팀은 정비 업무 전반을 아우르면서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할 때 근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에 현원이 정원의 80%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고참 직원들도 정비 현장에 투입되느라 해당 팀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경력 20년 안팎의 고참 운전원들이 맡아온 '발전대리' 보직이 없어진 것도 인력 감축에 따른 영향이다. 고리원자력 제1발전소에서 운전원으로 일해온 김아무개(32)씨는 지난 5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인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원래 고참 직원이 가거나 경력이 짧은 직원이 가더라도 발전대리가 옆에서 보완을 해줘야 하는 자리인데 그런 조건이 마련되지 못해서 고인이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왔다"며 "조그만 실수에도 중징계가 내려지다 보니 심리적 압박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부족에 따른 현장의 불안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7월 경북 울진의 한울원전 5호기의 가동이 멈춰섰던 것도 인턴 직원의 오작동이 원인이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경주 월성원전 1호기의 차단기 오작동 역시 막 인턴을 끝낸 신입사원의 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익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국내 원자력산업 구조가 결과적으로 중대 사고의 배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원전은 다른 산업부문과 달리 고위험 산업인 탓에, 노동자들의 업무 과다와 피로도 누적, 숙련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원전 운영상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22일 사회공공연구소와 원전 관련 4개 공기업 노조 등이 지난 5~6월 실시한 '원자력 노동자 의식조사 및 작업장 안전문화 평가 조사' 결과를 보면, 한수원과 한국케이피에스(KPS),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전력기술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1754명 가운데 1268명(72.3%)이 최근 5년여 동안에 수행 업무가 늘었다고 답했다. 각자 담당해야 할 시설과 설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70.4%에 이르렀다.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한수원은 정원을 1067명(기존 정원의 13.1%) 줄이고 한전케이피에스와 한국전력기술도 각각 460명(10.2%)과 195명(10.2%)씩 감축한 바 있다. 일부 발전소에서는 운영과 정비를 포함해 17~33%까지 근무 인원이 줄었다.

이런 영향 탓에 이번 조사에서 인력 부족으로 과거와 같이 꼼꼼하게 안전 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고 답한 이들의 비중은 전체의 80%에 이르렀다. '계획예방정비'(점검을 위해 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것) 기간 단축 문제가 안전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서도 93%가 우려를 나타냈다. 1990년대 대략 60일이었던 계획예방정비 기간은 2011년에 27일까지 줄어든 바 있다. 이런 무리한 기간 단축은 보수 불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발전자회사(한수원)의 원자력 발전기 고장률은 2010년 10%에서 2012년 39.1%로 치솟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원전 노동자의 74%가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종사자로서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프랑스에서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유지·정비 작업을 대부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일선 노동자들의 피로도 증가가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23.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