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감량여성 사망 사고 전말

 

“제작진이 55kg까지 감량해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한 케이블 TV에 ‘비만녀’로 출연한 뒤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24)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아버지 신모 씨(53)는 부검이 이뤄진 24일 경북대 부검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TV 제작진의 요구로 딸이 과도하게 체중을 줄이는 바람에 건강 이상이 왔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해당 제작진은 “목표 체중치를 제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방송계에서 난무하고 있는 ‘다이어트 프로그램’들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 무리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부른 비극

비만 때문에 대인기피증과 조울증을 앓았던 신 씨는 지난해 1월 동갑이었던 이종사촌이 해당 프로그램에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면서 출연을 결심했다. 당시 몸무게는 131kg. 1년 후 변화 상태를 보는 올 1월 방송에서 45kg을 감량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신 씨는 1년 9개월간 4차례 방송에 나왔고 최근 몸무게는 56kg까지 내려갔다. 무려 75kg을 줄인 것이다. 하지만 22일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다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1차 검안에서 신 씨의 사망원인은 ‘저칼륨 혈증으로 인한 뇌성혼수(추정)’로 나왔다. 체중 감량이 지나칠 때 혈중 칼륨 농도가 낮아져 구토 등이 일어나는 증세로 심하면 쇼크사 할 수 있다. ‘위 축소 수술 후유증’의 추가 소견도 있었다. 신 씨는 케이블 TV 출연 때 위의 크기를 줄이는 ‘위 밴드’ 수술 장면을 공개했었다. 실리콘으로 만든 밴드를 위 상단부에 묶어 식사량을 줄였다.

아버지 신 씨는 “딸이 방송 초기에 식욕 조절과 지방 흡입 등에 실패하자 제작진이 위 밴드 수술을 권유해 받아들였다. 헬스 운동까지 병행해 처음에는 살이 많이 빠져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올 1월 받은 위 밴드 수술 이후였다. 아버지는 “항상 튼튼했던 딸이 추석 전날인 18일 고모집에서 구토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며 “딸에게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물으니 ‘수술 이후에 구토 때문에 쓰러진 게 4, 5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 측이 건강 문제를 설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수술한 병원이 위험성을 알리고 다이어트를 말렸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딸이 무리한 체중 감량을 계속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 신 씨는 “딸이 ‘만약 목표치(55kg)에 도달하지 못하면 수천만 원의 제작비용(수술비, 헬스장 이용료, 교통비 등)을 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추석 전에 ‘식욕을 줄여야 한다’며 위 밴드 수술을 또 받았고 여러 차례 약물 치료도 받았다. 절반만 빼도 성공한 것인데 왜 그렇게 욕심을 냈는지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어 “정확한 부검 결과가 나오면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내고 시위도 할 것”이라며 “딸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수술을 했던 병원은 “직접적인 사망과 위 밴드 수술은 연관이 없다고 보고 있다”며 “수술 직후면 몰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 안정화됐고 그동안 몇 차례 상담에서도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케이블 TV 관계자는 “목표 체중치를 제시하거나 제작비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신 씨가 출연한 프로그램은 2010년 신설됐으며 지난달 소재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시청률은 2% 안팎을 기록해 케이블 프로그램으로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 과다한 체중감량 부작용 속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비만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날씬한 몸매와 비만 체형을 ‘선(善)과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나눠 비만 체형을 척결 대상으로 낙인찍는 인식이 파다한 게 현실이다. 비만 체형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도 많다.

다이어트를 주제로 한 각종 TV 프로그램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모 케이블방송의 프로그램에선 비만 여성들이 식사량을 갑자기 절반으로 줄이기도 하고 트럭을 끄는 식의 자극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 감량 경쟁을 했다. 일정 기간 체중 감량치가 가장 적은 여성을 차례로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경쟁’을 도입해 출연 여성들끼리 견제와 갈등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뚱뚱한 여성은 의지박약’이란 편견을 심어주는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해 ‘한국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의 비만 낙인 재생산’이라는 논문을 낸 고려대 사회학과 임인숙 교수는 “국내 다이어트 프로그램들은 ‘뚱뚱한 사람은 무능력하고 무절제하다’는 식으로 외형적인 몸을 통해 내면적인 자질까지 규정하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한다”며 “이런 인식이 예능적인 면과 어우러지면서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TV를 지켜보는 대중들은 비만 체형의 여성이 극한의 다이어트를 통해 마른 체형으로 거듭나는 모습에 환호하며 동경할 뿐 무리한 다이어트의 부작용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연예인은 단기간에 수십 kg씩 감량한 경험을 경쟁적으로 홍보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사망한 여성처럼 위 밴드 수술과 약물 복용을 통해 급격하게 살을 빼면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위 밴드 수술은 식도와 위 사이에 의료용 밴드를 넣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도록 하는 수술인데 밴드가 위를 파고들어 점막에 상처를 입힐 수 있고 음식물을 일정량 이상 섭취하면 구토를 유발해 기도가 막힐 수도 있다. 강희철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는 “신 씨 사건의 경우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급작스럽게 쇼크를 일으키거나 질식을 유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씨가 장기간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억제제 등의 다이어트 약은 심장과 혈관뿐 아니라 인지 능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장기간 복용하면 신경 흥분 성분이 심혈관계에 무리를 줘 혈관 노화를 촉진하고 심장 판막에 염증을 일으켜 심부전증 폐동맥고혈압 등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by 100명 2013. 9. 26. 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