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빌려간 개인이나 법인이
불법 매매·담보대출에 이용
작년 서울서 98대 반환 안돼
소송으로 찾은 차는 1대뿐

고소해도 기소중지·벌금형
구제받을 길 사실상 없어

“나~ 참! 대기업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지난달 말, 국내의 한 대형 렌터카 업체 감사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업체의 한 지점이 계약 해지된 렌터카를 돌려받기 위해 ‘검은 양복’들의 회사 통장에 가압류를 건 데 반발한 것이었다. “아, 우리도 2800만원 빌려주고 받은 담보물(차)인데, 돈을 받지도 않고 어떻게 차를 내줍니까. 대기업이 무작정 이렇게 뺏어가겠다고 해도 되는 겁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은 대부업체의 직원들. 사정은 이랬다. 소규모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ㄱ씨가 지난 1월께 이 렌터카 업체에서 6000만원을 훌쩍 넘는 ‘에쿠스’ 신차 넉 대를 임차했다. ㄱ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이 어려워졌다”며 렌트 계약을 해지하고서도 에쿠스 4대 중 3대는 돌려주지 않았다. 업체가 그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즈음 차량 3대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한참 만에 차를 찾았다는 전남 나주경찰서 쪽의 연락을 받고 회사 관계자가 부랴부랴 달려갔을 땐 이미 ‘검은 양복’들이 차를 가져간 뒤였다. 권리관계는 렌터카 업체와 ㄱ씨, 대부업체 등 삼자가 풀 문제니, 가환부(임시로 되돌려줌)했다는 게 경찰 쪽 얘기였다. 렌터카 업체는 명백한 소유권을 갖고도 졸지에 2억원어치의 차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렌터카를 빌린 개인이나 법인 등이 렌터카를 불법적으로 매매·전대(재임대)하거나 담보 대출에 이용하면서, 렌터카 업체들이 차를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국내 렌터카 사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법이 렌터카 시장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이런 법의 사각지대가 ‘대포차’(소유주와 운전자가 일치하지 않는 무적차량)의 음성적 거래 가능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자동차대여사업조합은 지난해 서울 소재 렌터카 업체 252곳 중 37개 업체가 고객으로부터 98대의 차량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중 불법 매매된 차량은 18대, 불법 담보로 제공된 것은 13대다. 나머지 미반납 차량 66대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이 차들도 불법 매매·전대되거나 담보로 제공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서울 외 전국의 605개 업체로 실태 조사를 확대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건수가 많지 않은 듯해도, 법률적 대응이 가능한 대형 업체보다는 중·소규모 업체들이 주요 피해자라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크다는 게 업계 쪽의 하소연이다. 서울시만 해도 사업자의 55%가량인 139곳이 100대 미만의 차량을 운영하는 소규모 업체들이다. 불법 매매 등에 이용되는 렌터카가 주로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3000만원 이상 중대형 차들’임을 고려할 때 중·소 렌터카 업체가 입게 될 타격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렌터카 업체가 차량을 돌려받지 못해도 구제받을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렌터카를 불법 매매하거나 불법으로 담보 제공을 해도, 매수자나 담보 취득자를 형사 처벌할 규정이 없다. 렌터카를 반납하지 않은 고객(임차인)을 횡령죄로 고소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고객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기소중지되거나 100만~3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게 고작이다. 고객이 자발적으로 차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민사소송까지 가야 하지만,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소송을 해서 돌려받은 차는 단 1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렌터카 업체들은 돌려받지 못한 차량에 대한 말소 등록조차 할 수 없어 ‘2차 피해’까지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차량 말소 등록을 하려면 등록번호판과 봉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렌터카 업체는 차량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최장 18년(판례에 나온 렌터카 폐차령) 동안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와 각종 세금까지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개 차량 한 대의 렌터카 영업 기간은 5년인데, 말소 등록조차 할 수 없다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10. 7. 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