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틴베스트, 30대 기업집단 조사
주주 권리·정보 투명성 등 평가

KT·두산·NHN 등은 상위 등급

상장기업들이 이사회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지, 상법상 주주의 권리를 지키는지를 분석한 결과, 현대자동차와 에스케이(SK)그룹 등이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집단에 견줘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책임투자 전문분석기관인 서스틴베스트가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30대 기업집단(시가총액 기준)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 내놓은 ‘기업 지배구조’ 평가 결과를 보면, 케이티(KT)와 두산, 엔에이치엔(NHN), 삼성의 계열사들은 대부분 상위 등급(A)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에스케이(SK), 씨제이(CJ), 한화 그룹 계열사들은 하위 등급(C,D)이 많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백지영 서스틴베스트 책임연구원은 “기업의 경영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한지 평가모델을 통해 점수화했다. 대부분 기업이 60점(총점 100점)을 넘기지 못하는 등 국내 기업들의 수준이 미흡함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점수를 토대로 기업별 상대등급(A~E)을 나눴다.

이 평가는 서스틴베스트가 주주의 권리·내부거래 및 정보의 투명성·이사회 구조와 운영·임원의 보상·관계사 위험 등을 ‘지배구조’의 주요 평가항목으로 삼아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산정했다. 집중투표제나 전자투표제 실시 여부와 이사회내 사외이사 비율, 영업이익 증감 대비 임원 보수, 순자산 대비 관계사 우발 채무비중 등 수십개 항목을 따졌다. 서스틴베스트는 2007년 평가모델을 개발해 2011년 400대 기업, 2012년 500대 기업 평가 자료를 축적한 데 이어 올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기업 가운데 상위 10%에 드는 A 등급은 삼성엔지니어링, 엘지(LG)전자, 포스코, 네이버, 두산중공업 등이 포함됐다. 하위 등급인 D등급엔 현대차와 기아차,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에스케이텔레콤, 씨제이 씨지브이(CGV),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곳이 대거 포함된게 눈길을 끌었다. 최하위(E) 등급엔 한화와 씨제이제일제당, 금호타이어, 대한항공, 동부제철이 꼽혔다.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여러 곳의 점수가 저조한 것은 재벌의 ‘불투명한 경영’ 탓이 컸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들은 관계사 위험이 부각돼 좋은 등급을 받지 못했다. 서스틴베스트 쪽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가 특수관계자와의 평균 매출 거래 비중이 80% 이상이고, 현대위아는 70%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다”고 설명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최대주주(31.88%)인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총수를 위해 계열사가 일감을 몰아주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에스케이텔레콤(D등급)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D등급)도 최하위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최태원 그룹 회장의 횡령 혐의 등이 감점 요인이 됐다. 또 평가대상 계열사 14곳 가운데 11곳엔 5년 이상 재직한 사외이사 및 감사가 있는 게 점수를 깎았다. 서스틴베스트 쪽은 “사외이사의 지나친 장기 근속은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최고 경영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대신 고액 연봉이 보장된 사외이사를 계속하기 위해 ‘거수기’만 했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남대우 전 에스케이 사외이사도 “사외이사 임기를 두번 맡았으면 충분하다. 회사와 정들면 사외이사 역할을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더 높은 삼성전자(B등급)가 엘지전자(A등급)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전원 찬성 의견을 냈지만, 엘지전자는 일부 조건부 찬성 의견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서스틴베스트는 사외이사의 반대 및 기권이 있는 경우가 적극적으로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방해 혐의로 과태료를 받은 임원이 2개월 뒤 승진한 것도 감점 사유가 됐다.

씨제이제일제당(E등급)은 특수관계자에게 제공한 지급보증, 담보 금액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90%)이 높은 게 지적됐다. 백지영 연구원은 “이 지표가 높으면 다른 계열사에 유동성 위험이 있을때 동반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웅진그룹이 그랬다”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기업 지배구조 평가방법

서스틴베스트는 올해 6월부터 두 달 동안 사업보고서 등 공시자료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정부·기관 통계 등 자료를 수집했다. 공개된 자료를 모은 뒤 대상 기업에 보고서를 보내 검증 절차를 밟았다. 검증 뒤 재무 성과 분석과 산업별 분석 등을 더해 세계적 기준에 맞춘 평가 모델에 입력해 환경·사회·지배구조 부문별 점수를 냈다. 올해엔 <한겨레>와 함께 지배구조를 따로 떼내 추가 분석을 실시했다. 상법에 명시된 주주의 권리를 지키는지, 이사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 임원의 보수는 공정하게 책정되는지, 일감을 그룹 계열사에 몰아주는지, 공시위반 행위 등을 점수화했다. 서스틴베스트는 3조8000억원 규모의 사회책임투자펀드를 운영하는 투자기관들을 자문하고 있다.
by 100명 2013. 10. 15. 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