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매료된 한국 사회는어법에도 맞지 않는 '진격에~' 패러디에 빠져있다. 사진은 '진격의 거인' 한 장면

IPTV에서 지난 3개월동안 이용자가 가장 많은 선호를 보인 애니메이션은 '진격의 거인'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애니메이션 장르 VOD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진격의 거인’은 매주 일본 현지 방영과 함께 국내에서도 포털 검색 1위에 오르는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진격의 거인'은 처음에는 마니아 수준에 머물렀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었고 각 종 매체와 광고 홍보 카피에 패러디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진격의~'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하다. 

대형가오리가 발견되면 '진격의 가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왕오징어는 '진격의 오징어'가 된다. 큰 햄버거나 두툼한 김밥도 '진격의 햄버거'나' 진격의 김밥'이 된다. 양이 많은 음식이 등장했다면 '진격의 오므라이스'와 같이 사용한다. 성장율이나 기세가 대단하다면 '진격의 캠핑', '진격의 체크카드'라고 붙인다. 심지어 대단한 행사가 있다면 '진격의 축제', '진격의 이벤트', '진격의 미술관'이라고 한다. 이런 용법의 사례는 주로 크기나 양, 힘에 대한 비교차원에 해당한다. 볼륨 있는 몸매를 드러내는 연예인들에게는 ' 진격의 볼륨 몸매', 남자연예인에게는 '진격의 근육남'이라고 한다. 거침이 없는 모습에도 진격이 붙는다. '진격의 며느리', '진격의 회사원'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쓰임은 평소에 눌려 있는 이들과는 대조적이다.

 '진격의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던 배우 이순재는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해외인데도, 거침없이 혼자 숙소를 잘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직진본능이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진격의 순재, 진격의 할배라는 말을 들었다. 진격이라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드라마 '굿닥터'의 주상욱 은 '진격의 욱상욱' 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같은 별명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드라마 초반에 제가 소리 지르고 욱하는 장면이 많아서 (팬들이)그것만 따로 편집해서 공개가 됐다. 그런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같은 별명을 얻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행동을 진격에 비유했다.

'진격의 거인(進擊の 巨人)'을 우리 말로 올바르게 번역하면 '진격하는 거인', '거인의 진격'이라고해야 하지만 잘못된 번역이라는 '진격의~'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만약 '진격하는 거인', '거인의 진격'이라는 번역으로 했다면,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이렇게 많이 패러디 했을까 의문이 든다. 이유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거인' 보다는 '진격'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인이라는 주체보다는 그 거인이라는 존재가 보이는 양태에 주목한다. 사실상 거인이기 때문에 진격이라는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거인이라는 단어 자체는 활용 범위가 넓지 않다. 하지만 진격은 거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진격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거인은 결코 긍정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도 거인이 아니다. 진격하는 거인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이유 없이 인간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거인들의 행태는 충격을 넘어 공포 그 자체다. 자신은 물론 가족, 친구, 지인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적인 무력감을 느끼지만 끝내 거인에 대항해 내는 주인공  젊은이들이 패러디나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거인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좌절과 두려움을 떨쳐 내주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단지 언론이나 홍보 매체가 재미를 위해 차용하고 있기 때문일까.

거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잡아 먹는다.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들은 이성이 없으며 합리적인 논거를 갖지 못하고 진격의 본능과 식인의 행태를 보일 뿐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그들의 행태를 생각한다면, 배격을 해야 겠지만 사람들은 이를 차용한다. 내용이나 의미와는 관계없이 키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키치적인 현상보다는 무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선망의 본능이 거인의 진격에서 방출되는 면이 중요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거인의 진격이 의미하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거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며 그들을 막을 존재들도 없다. 거인들을 싫어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되고 싶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상태란 누구에게나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거인들은 하나 같이 웃거나 천진난만하다. 그들은 친구나 연인, 가족들을 데리고 인간을 먹으며 만족감을 표한다. 이는 우리들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또다른 괴물이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질주 하는 우리는 어느새 그것이 우리를 한순간에 파괴 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그것이 거인의 종말이다. 당장에는 그들이 진격에 거침이 없지만 이성과 합리, 도덕과 윤리의 상실은 스스로의 파괴는 물론 종족 자체의 멸종을 가져온다.

물론 사회적인 맥락에서 진격이 익숙한 한국 사회라는 점도 보아야 한다. 진격이라는 단어를 추구하며 달려 온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진격에 대한 친숙함이 존재한다. 진격은 적을 향해 돌진해 그들을 부수려는 행동이다. 하지만 정말 적을 향한 돌진인지 아군을 향한 돌진인지 성찰해야 한다. 거인들은 최소한 자기들끼리 잡아먹지는 않는다. 괴물을 부순다고 하면서 자신이 괴물이 되기도 한다. 진격을 향해 가고 있지만 정작 자신만의 성에 갇힐 수도 있다. 위기와 위협을 강조하는 일본이 재무장 추진 등 진격을 통해 스스로 고립되는 것은 전형적인 사례이다

by 100명 2013. 10. 16.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