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보고 국민은 못 보나..요금인가제의 함정
보조금으로 단말기 가격 착시..보조금 공시제 도입해야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통신서비스와 스마트폰의 원가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까. 올해 미래창조과학부 국감의 최대 이슈는 통신비와 단말기 제조원가 공개문제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SK텔레콤(017670)(235,500원 0 0.00%)삼성전자(005930)(1,450,000원 0 0.00%)에 원가공개를 요구했다.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14일 “통신비 원가 자료 공개와 관련된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증인으로 나온 백남육 삼성전자 한국총괄부사장은 “단말기 원가는 영업기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사실 기업이 만든 상품이나 재화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민간건설업체의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이 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어떤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가치를 반영해야지 원가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통신비와 단말기원가 공개 논란을 시장경제 역행의 관점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상당하다. 원가공개라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규제하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지만, 대안없이 무조건 반대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시스템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무원은 보고 국민은 못 보나…요금인가제의 함정

유성엽, 최재천, 이상민, 유승의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통신비의 원가를 공개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통신요금은 인가하는 상황에서 가격적정성에 대한 감독권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무원은 SK텔레콤이 제출한 요금원가 자료를 보는데, 국민은 못 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정부가 수십 년 동안 통신요금을 인가해왔지만, 국민이 요금인하를 체감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밖에 없는 요금인가제가 정말 통신비 인하의 대안인지는 논란이다. 오히려 통신3사간 요금제 베끼기 경쟁을 용인하고, 파격적·혁신적인 요금경쟁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은희 의원(새누리)은 “3사가 유사요금제를 출시하는 이유는 바로 요금인가제 때문”이라며 “메이저사업자(SK텔레콤)가 밴드를 정하면 이를 따라하기 때문에 경쟁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병헌 의원(민주)은 지난해 16개월 만에 해지한 사람이 6개월 차에 해지한 사람보다 더 많은 약정할인 위약금(단말기 할인 반환금)을 내는 사실을 비판하면서, “SK텔레콤이 정부에서 인가받자마자 KT와 LG유플러스도 하겠다는 것은 인가제를 빌미로 한 담합행위”라고 질타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면서 동시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라는 3사 과점인 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래부 고위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유지된 5대 3대 2의 점유율 구조 속에서는 혁신적인 요금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며 “자격만 된다면 제4이동통신을 선정해 시장에 긍정적인 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국감, SKT-삼성전자 원가공개 후폭풍
▲OECD 이동전화 소매요금규제 현황(출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07년 기준)
*유선전화의 경우 독일, 일본, 호주 등 9개국은 ‘가격상한제’
◇불투명한 보조금으로 단말기 가격 착시… 보조금 공시제 도입해야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은 단말기 제조원가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글로벌 경쟁에서 경쟁업체에 유리한 빌미를 줄 수 있다”면서 “해외에서는 그런 제안을 받은 바 없으며, 국내에 파는 것은 수량 비중으로보면 3% 밖에 안 판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 사양 스마트폰외에는 살 수 있는 휴대폰이 거의 없고, 냉장고 가격에 버금가는 고가 스마트폰이 보조금 때문에 정확한 가격을 알기 어려운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불투명한 보조금으로 제조사들이 출고가 안 내린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다.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중저가 스마트폰 출고를 늘리고 국회에 발의된 단말기 보조금 유통구조 개선법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해진 의원(새누리)이 대표발의한 이 법은 이통사 뿐 아니라 제조업체의 판매 장려금 차별 행위도 정부가 규제할 수 있게 했으며, 단말기를 사러 갔을 때 소비자들은 출고가와 보조금, 제조사 판매장려금, 약정 등 가입요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백남육 부사장은 “진행 중인 법안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제조사로서는 부분적으로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아쉬움을 남겼다.
by 100명 2013. 10. 17.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