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이번 수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닥칠 일이 더 문제일 수 있다."

통신업계가 22일 전격 이뤄진 검찰의 KT 본사 압수수색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간 루머로만 나돌던 KT와 이석채 회장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현실화되자 통신업체들은 검찰의 KT 수사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날 검찰의 KT 압수수색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검찰에 이석채 KT 회장을 고발한 것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상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과 10월에 각각 이석채 KT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KT가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 사이버MBA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해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게 이유다. 이후 검찰이 이석채 회장과 KT를 수사했지만 KT 측이 검찰에 자료제출 등을 성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검찰, 이석채 회장 정조준?

그러나 통신업계에서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단순히 참여연대의 고발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검찰의 수사는 정권교체 이후 이 회장을 향한 '여러 개 칼 중 하나'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참여연대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시기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이 있었던 2월인데다 이후부터 업계에서는 이석채 회장의 퇴진설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함께 끊임없이 재생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KT 본사는 물론 서초 사옥, 광화문 지사, 이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자택 등 16곳으로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KT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예상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공기업 시절 관행 이어져

공기업이었던 KT는 지난 2002년 완전 민영화됐다. 현재 정부 지분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민영화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KT의 사장은 정권에 따라 교체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지난 2008년 남중수 전 KT 사장은 납품비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다. 이후 취임한 이석채 회장도 MB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퇴진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해 오는 2015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8년 남중수 사장 사건의 악몽이 떠오른다"면서 "당시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벌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언급했다. 당시 검찰은 2008년 10월 KT와 KTF 납품비리 혐의로 KT 본사와 남중수 전 사장을 수사했다. 그 결과 남 전 사장은 대법원에서 납품비리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회장 퇴임설 끊임없이 제기

실제 이석채 KT 회장의 퇴임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급기야 KT 커뮤니케이션실이 나서 이석채 회장의 퇴임설이 '사실무근'임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도 마련했다. 당시에는 이석채 회장의 와병설·입원설 외에도 청와대로부터 자진사퇴 요청을 받았고 이에 따라 이사회에서 본인의 거취를 표명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을 때였다.

이후에도 소문은 가라 앉지 않았다. 지난 8월 말에는 청와대가 나서 직간접적으로 이 회장에게 사임 압력을 행사했다는 보도가 또 다시 나와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따라 이석채 회장은 9월 초 열린 사내 행사에서 직원들을 향해 "자기 울타리·회사가 무너져가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에 대고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 모략하고, 태연하게 회사 임원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런 이들은 여러분들의 힘으로 막아야 하고 아직 태평인 사람은 나가라고 걷어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영기업 수장 교체는 '주주 몫'

업계는 이석채 회장에 대한 루머성 퇴진 압력이 이어질수록 KT라는 회사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시장은 이미 가입자가 포화상태여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업계의 수익성이 안 그래도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이어지면 내부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실적 부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완전 민영화된 기업에 대해 정권이 나서서 사퇴를 운운하는 모양새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가 많다. 이번 사태의 결과에 따라 똑같은 문제가 또 다시 5년 뒤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검찰의 KT 수사는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도 전례없이 이 회장이 '준공기업'인 KT 수장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데 따른 '경고 신호'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민영 기업에서 임기가 보장된 수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주주에게 달린 것임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KT는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참여연대가 고발한 내용과 관련해서는)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그간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검찰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by 100명 2013. 10. 23. 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