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확 변했다. 그간 잡스의 색깔을 완전히 씻어낸 팀 쿡이 애플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간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아온 애플이 이제는 가격 경쟁력까지 욕심내고 있다.

22일(현지시각) 애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바 부에나 아트센터에서 발표 행사를 갖고 아이패드 에어, 미니 2세대, 새로운 맥북 프로 등 신제품을 대거 발표했다.

이날 행사의 메인요리는 ‘아이패드 에어'였지만 손님들은 애피타이저에 더 높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가장 먼저 발표된 애플의 새로운 맥 운영체제 매버릭스와 핵심 소프트웨어의 전면 무료화 발표가 그것이다.

이전까지 애플은 모든 소프트웨어에 적잖은 가격을 매겨왔다. 파격적인 가격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전 맥 OSX 마운틴라이언은 19.99달러였다. 여기에 페이지스, 넘버스, 키노트 등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묶은 아이워크는 99달러, 아이포토, 아이무비, 개러지밴드가 포함된 아이라이프는 79달러에 판매됐다.

▲ 에디 큐 애플 부사장이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소프트웨어가 지금 시점부터 사실상 무료로 제공된다. 엄밀히 말하면 아이라이프는 과거부터 맥 제품에 기본 포함돼 있기 때문에 중고 제품을 쓰고 있지 않은 이상 비용이 발생되지 않으며, 아이워크는 이전에 한번이라도 구매한 사람이라면 최신 버전이 무료 제공된다. 심지어 아이클라우드를 이용하면 맥북을 사지 않고 윈도PC에서도 아이워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새로운 맥북 프로 역시 가격을 크게 낮췄다. 최신 인텔 코어 프로세서 탑재로 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맥북 프로의 가격은 종전 같은 화면 크기의 모델 대비 200달러나 저렴해졌다. 그간 맥북은 동일한 사양의 윈도OS 기반 노트북 보다 늘 200~300달러 가량 비싸게 판매됐다. 그러나 윈도 노트북에 10만원대 오피스 프로그램을 더하면 이제 아이워크가 포함된 맥북 프로보다 비싼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애플의 파격적인 무료 전략은 이미 지난달 아이폰5S와 5C를 발표부터 감지됐다. 물론 이들 제품이 공짜폰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 시장에서는 2년 약정 기준 사실상 공짜에 가까운 가격에 공급됐다. 이동통신사와 유통 채널의 경쟁이 과열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애플의 정책적 결정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가격이다.

이는 애플이 그간 필사적으로 지켜온 이익률 보다는 시장 확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가진 애플에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많은 소비자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서의 이러한 무료 정책은 파급력이 훨씬 크다. 과거 80년대 초 애플을 시작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태동하던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MS-DOS의 파격적인 저가 판매와 공짜 배포에 가까운 암묵적 복제 허용 정책이 있었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무엇보다 아이워크의 무료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애플은 여전히 액셀, 워드, 파워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MS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애플이 일찌감치 교육용 시장에 주력해 온 이유도 이러한 시장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포석이다.

사실 애플이 MS와 제대로 경쟁하기를 원했다면 진작 소프트웨어를 무료에 가깝게 시장에 풀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의 자존심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팀 쿡은 생각이 달랐다.

더욱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러한 가격 인하 정책이 그간 애플이 쌓아온 프리미엄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드웨어 성능이나 완성도는 해를 거듭할 수록 좋아지는 반면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혹은 내리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애플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팀 쿡 체제 이후로 애플의 폐쇄 전략이 점차 수정되고 있는데 이는 애플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by 100명 2013. 10. 23.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