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이 케이티 본사 등 16곳을 압수수색하던 지난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케이티 사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다음주의 질문

검찰이 지난 22일 케이티(KT) 본사와 이석채 회장의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세청은 지난 9월초부터 포스코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시곗바늘을 정확히 5년 전으로 돌려보자. 검찰은 2008년 11월초 남중수 케이티 사장을 부하 임직원과 납품업체에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한달 뒤인 12월초에는 검찰이 포스코 본사와 이구택 회장의 자택에 대해 국세청 금품로비 혐의로 압수수색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이 회장은 바로 사의를 밝혔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재계의 한 고위 인사는 “5년 주기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이를 우연이라고 생각할 국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케이티와 포스코 주변에서는 경제판 ‘채동욱 찍어내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권력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검찰총장을 언론에 약점을 흘려 낙마시켰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안 드는 케이티와 포스코 회장을 쫓아내기 위해 비리를 캐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티 이석채 회장과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진작부터 사퇴압력설에 시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말 10대 그룹 총수와의 회동 때 재계 6위인 포스코 회장을 제외했다. 또 지난 6월말 방중 당시 시진핑 주석과의 만찬 때 이 회장과 정 회장을 모두 초청 대상에서 뺐다. 급기야 지난 9월초에는 두 사람이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이석채 회장과 정준양 회장은 오래전부터 적지 않은 허물이 지적돼 왔다. 이 회장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낙하산 임명됐다. 취임 이후에도 경영 악화와 직원들의 잇단 자살, 부당해고 등의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또 홍사덕 고문 등 전현직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을 무더기로 영입해 방패막이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압수수색의 발단도 시민단체들이 1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게 발단이 됐다. 정 회장은 5년 전 선임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큰 논란을 빚었다. 재임 중에도 잇단 기업 인수, 협력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정권 실세들이 막대한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국세청 세무조사의 초점도 이에 맞춰져 있어, 이 전 대통령 쪽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전부터 스스로 물러난 뒤 신망있고 능력있는 내부 인사를 차기 최고경영자로 추대해서, 권력 개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고언을 지인들로부터 들었다. 이를 무시하다가 결국 실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하는 방식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케이티와 포스코는 정부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는 순수 민간기업이다. 청와대가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 선임에 입김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자,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누구를 후임자로 앉히든 5년 뒤 다음 정권에 의해 쫓겨나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권력의 개입은 두 기업은 물론 전체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재계 6위와 11위의 대기업이다. 두 회사의 계열사는 100개를 넘고, 매출액은 100조원에 달하며, 직접 고용하는 임직원 수는 10만명을 상회한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이런 대기업이 최고경영자의 낙마설에 시달리며 리더십이 흔들리고 의사결정 기능이 마비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스스로 용퇴할 기회를 놓치고, 회사까지 위험에 빠뜨린 포스코와 케이티 최고경영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두 회사를 여전히 권력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박근혜 정부와, 권력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검찰과 국세청의 구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낳는다.

박 대통령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비리는 철저히 밝혀내되, 차기 최고경영자 선임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출발점이다.

by 100명 2013. 10. 26. 0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