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민기 기자 = 이석채 KT 회장이 검찰의 두 차례 압수수색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그동안 정치권과 검찰의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지만 이로 인해 직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3일 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전 임직원에게 메일을 통해 "직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왕 앞의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이어 "후임 CEO가 결정될 때까지 남은 과제를 처리하고 후임 CEO가 새로운 환경에서 KT를 이끌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의혹들이 해소될 수 있다면 나의 연봉도 숨김없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메일에서 지난 4년 동안의 시간을 회상했다. 그는 KT가 투명하고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나게 임직원과 함께 추진해왔고 그 결과 재벌이 아닌 기업도 치열한 전장에서 당당히 겨뤄 성공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IT시스템의 혁신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글로벌 사업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닦던 때에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돼 회장으로서 참담한 마음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우리의 사업과 인력구조로는 IT컨버전스 위주로 변화된 환경과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경쟁사 대비 1조 5000억원 정도 인건비가 소요되고 있어 1조까지 줄인다는 개선을 올해 안에 이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사퇴 배경에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결정적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양호산 부장검사)는 지난달 31일 오후 11시30분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새벽 시간 동안 KT의 분당·서초·광화문 사옥과 임직원 5∼6명의 주거지 등 8곳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에도 경기도 분당의 KT본사와 서울 광화문·서초 사옥, 이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자택 등 16곳을 압수수색해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내부 보고서 등을 확보했다.

이는 이 회장이 시민단체로부터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피소된 사건과 관련,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의혹 등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KT가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해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이 회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달 초에는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이 회장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KT 사옥 39곳을 매각하면서 사측에 860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사퇴의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 달 29일(현지시간)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정면 돌파란 단어를 모른다"면서도 "내 할 일 할 것이다.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 심겠다는 그런 것이다"고 밝혀 회장직을 이어갈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정치권에서도 청와대가 정권이 새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민영화된 KT의 최고 수장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고 월권이며 KT의 경영에도 좋지 않다는 시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 회장은 회장직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였으나 검찰이 열흘만에 압수수색에 들어오고 정치권에서도 무궁화호 불법 매각 등으로 형사 처벌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사퇴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검찰의 압수수색 속에서도 끝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나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어지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사퇴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민영화 된 KT지만 여전히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by 100명 2013. 11. 4. 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