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단말기 할부대금 채권을 기초로 31일 발행한 11회차 자산유동화증권(ABS)이 회사채 시장에 소리없는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발행사인 KT가 투자자와 눈높이를 맞추겠다며 이례적으로 가중평균 가산금리를 직전 발행 회차 대비 2bp 인상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은근히 인수 부담을 걱정하던 대표주관사와 인수단은 쌍수를 들어 KT의 조치를 환영했고 망설임을 떨쳐버린 투자자들은 3080억 원의 대규모 ABS 물량을 100% 청약했다. 증권사와 투자자들은 특히, 수요가 취약한 12~24개월물 구간의 금리를 올린 것에 '세심한 배려'라는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까지 KT는 ABS 발행금리를 낮추는 주역이었다. KT가 처음 단말기 할부대금 채권 유동화를 시작한 2012년 4월 이후 1년이 넘도록 전반적인 금리 하락기가 이어지면서 가중평균 가산금리는 16bp에서 5bp까지 떨어졌다. KT가 금리를 내리면 다른 발행사들도 동참했다. 채권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도 수요는 충분했다.

그러나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6월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금리는 슬금 슬금 올랐고 통신사들의 ABS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투자자들은 주저하기 시작했다. 타 통신사가 발행한 단말기 할부채 ABS의 경우 일부 트랜치에서 미매각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2~24개월물 구간이 문제가 됐다. 12개월물 이하의 단기물은 증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주로 활용되기 때문에 금리가 변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24개월물 이상 역시 주요 투자자인 연기금, 공제회 등이 만기까지 ABS를 보유한다는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12~24개월물의 투자자는 보험사 혹은 자산운용사들이 주축. 시가평가를 수시로 하는 이들은 금리 상승에 따른 평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금리 인상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들 상당수가 24개월 이상의 장기물로 갈아탄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12~24개월 만기 구간에서 투자자를 확보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는 발행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경쟁사들은 해당 구간의 ABS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단말기할부채권 유동화한 신한카드 및 KB카드 등이 1bp내외로 가중평균 가산금리를 높여서 발행했다. 하지만 금리 상향에도 시장 수요는 기대만큼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11차 단말기할부채권 ABS를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KT는 시장의 눈높이가 생각보다 높다고 판단, 이에 맞는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로 했다. 주관사들의 수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2~24개월물 구간에서 추가 가산금리를 적용한 것. 이는 그 동안의 미매각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 금리를 반영한 것으로 급증하는 단말기 ABS 시장에 의미있는 의사결정으로 해석된다

불과 1bp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차이는 컸다. 경쟁사보다 더 낮은 금리로 발행을 해야만 '승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국내 기업들의 인식의 틀을 깨고 시장의 흐름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인수단에 참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가중평균 금리는 1bp지만 수요가 없을 것으로 걱정했던 12~24개월물의 상향 폭은 투자자 입장에서 매우 크게 받아들여졌다"며 "KT가 조달비용 증가를 무릅쓰고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11. 6. 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