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하는 카이스트 교정에는 작년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와 통신하는 기지국이 있다. 나로호는 지표면에서 300㎞ 떨어진 상공에서 매일 지구를 13바퀴 돌며 기지국과 교신한다. 바쁘기 그지없다.

나로호와는 달리 미국 GPS(위성위치추적시스템)를 구성하는 위성은 약 2만㎞ 상공에서 하루에 두 바퀴씩 우아하게 지구를 돌며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GPS 측위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1977년부터 15년에 걸려 30여 개 위성을 쏘아 올렸다. 러시아 중국 일본도 위성 수십 기를 발사하고 미국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부럽기 그지없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GPS 시스템을 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위치인식 분야에서 변방 국가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위치인식 분야는 실외도 있지만 실내도 있기 때문이다. GPS 위성 신호가 도달하지 않는 실내에서는 무선랜 신호 중계기(일명 AP)가 위성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기에 달하는 AP가 설치된 위치 정보를 확보하는 쉽지 않은 장애만 극복하면 된다.

실내 공간에 설치된 중계기 위치를 파악하는 손쉬운 방법은 사용자 스마트폰을 통해 수집된 무선랜 신호를 모아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실내 GPS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은 현재 구글과 애플 그리고 삼성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런 위치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실내 GPS 분야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망설이고 있다. "왜 망설이느냐?"고 물으니 몇 년 내에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가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눈을 들어 세상을 보자. 미국은 GPS를 완성하는 데 15년을 소요했고 다시 위치인식 서비스를 통해 큰 이윤을 창출하는 데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위치인식 사업은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있어서인지 구글과 애플은 별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데도 표정도 바뀌지 않고 벌써 몇 년째 실내 GPS 분야에 매년 대규모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모처럼 맞이한 유리한 상황에서도 손을 놓고 있다. 안타깝다.

이 상태가 더 지속되어서는 누가 보아도 머지않은 장래에 구글과 애플이 실내 GPS 분야에서 삼성을 포함한 우리 기업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강자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스마트폰 사례처럼 이윤이 창출되는 시점이 다가오면 그때 슬그머니 시작해 얌체처럼 밥상에 수저를 올려놓아 보겠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은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애플이 미국에서 2007년 처음 아이폰을 출시한 뒤 2년이 지난 2009년 KT가 국내에 아이폰을 도입하려 했을 때 그것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은 삼성과 SK텔레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가 기업 측 반발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스마트폰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오늘날 삼성이 있을 수 있었다.

정부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기업들이 실내 GPS 분야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때는 할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산업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할 일 중 하나다. 기업도 선두 기업으로 오래도록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 갇히지 않고 자발적인 혁신 의지를 발휘하는 내생적 동기 구조를 갖춰야 한다.

 

by 100명 2013. 11. 6.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