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워했다. 국정감사로 약속했던 인터뷰가 당초 일정보다 늦어진 사이, 이석채 KT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그가 다시 나서서 KT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마뜩치 않아 보였다. KT는 그가 25년 동안이나 몸담았던 친정이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KT 저격수’로 통한다. 워낙 KT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서다. 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약 1시간반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난파선처럼 변해버린 KT를 두고 안타까워했지만 날카로운 지적은 여전했다.

이공계 출신인 그는 1986년부터 KT에서 근무한 ‘정통 KT맨’이다. 회사 내에서도 두 번째 여성 임원으로 뽑혔던 그는 지난 2010년 KT네트웍스 전무를 끝으로 그해 9월에 퇴사한 이후 벤처기업 대표를 거쳐 지난해 4월 총선(대구 북구갑)을 통해 정치권에 입성했다. 회사를 떠난지 몇년 지났지만, KT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KT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도 이 때문이다.

◇“1급수? 직원들도 정확한 회사실적 모르는데…”

그는 이 회장 퇴진과 관련, “더 곪아 터지기 전에 짜내야 한다”고 했다. 검찰 조사까지 받으면서 이어진 결정이어서, 아쉬운 감은 있지만 그래도 회사를 위해선 불행 중 다행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아프리카 출장에서 이 회장이 자신과 KT를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회사가 깨끗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1급수에서만 살았다면 그만큼 투명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근데 지금 KT 내부에선 직원들조차 정확한 회사 실적을 모르고 있어요. 이게 투명 경영인가요. 닫힌 경영이죠.”

KT 은폐경영 시도 사례를 소개할 때, 그의 목소리 톤은 더욱 높아졌다. “KT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 7월 140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 게 언론에 보도되니까, 내부적으로 자료 유출자를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고 하네요. 회사에 적자가 났으면 직원들도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죠. 알아야 더 노력해서 극복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권 의원은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KT에 3분기 월별 실적을 요구했지만,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거절 당했다고 한다.

◇“탈통신 외칠 때 아니다. 통신이 먼저다”

무엇보다 주력사업인 통신 부문에서의 경쟁력 악화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KT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통신입니다. 통신 비즈니스를 탄탄하게 한 다음, 다른 분야를 연계시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려고 해야죠. 본업인 통신이 망가지고 있는데, 다른 걸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잘못됐죠. 학생이 학교를 먼저 안가고, 다른 공부하겠다며 학원부터 가겠다고 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부임 이후, 줄곧 ‘탈통신’을 핵심 가치로 내걸고 달려왔던 이 회장의 경영방침에 대한 일침이었다.

실제, 계열사를 뺀 통신부문 위주의 KT 본체 실적(별도기준)은 급추락세다. KT는 올 3분기에 매출 4조1513억원에, 영업이익 1470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각각 16%와 32.8%씩 감소한 수치다. 계열사 실적을 더한 3분기 연결기준 실적(매출 5조7346억원, 영업이익 3078억원)만 따져선 안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가 (아프리카 출장 길에서) “마지막까지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 회장의 발언에 “지금은 심은 사과나무부터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일침을 놓은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쟁사에 비해 가장 뒤쳐진 영업이익이나 가입자당 평균매출액(ARPU) 상승과 같은 내실을 기해야 할 시점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다.


◇“올들어 직원 8명 자살…분명 문제가 있다”

악화된 실적만큼이나 우려되는 건 바로 갈수록 급증하는 사내 직원들의 자살율이다. 신입사원 평균 연봉 6000만원에, 경쟁률이 무려 150대1인 회사에서 갑자기 죽어나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2009년 이전엔 한 해에 1명도 안나왔던 직원 자살이 매년 2~3명씩 늘어나더니 올해는 8월까지 8명이나 나왔어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 회장은 2009년 1월 KT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이를 두고 사내 직원들에겐 “그래도 KT는 우리나라 평균 자살률보다 현저히 낮다” 내용의 메일을 보내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법 찾기보단, 우선 덮고보자는 안이한 경영진 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KT=낙하산 집합소’란 공식도 이젠 깨져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 회장을 대신할 신임 CEO도 포함해서다. “소위 ‘낙하산’라고 지목된 대부분의 KT 영입 인사들은 임원급입니다. 정보통신(IT) 전문가들도 아닌데 기존 직원들에 비해 훨씬 높은 연봉을 받고 유입되죠. 기존 구성원들에겐 물과 기름같은 이질감이 생길 수밖에요.”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KT 내부엔 열정적이면서도 애사심 높은 구성원들이 남아 있어서다. 그는 “낙하산 인사가 가져오는 고질적인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나 위화감 조성 같은 문제만 바로 잡아주면 KT엔 아직까지 열성적인 직원들은 많이 있다”며 “하루 빨리 확실한 미래 비전과 동기부여만 제대로 심어준다면 KT에게도 현재 어려움을 뚫고 다시 일어설 저력은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by 100명 2013. 11. 6.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