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를 표시한 이석채 회장이 돌연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KT가 경영 공백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회장이 ‘임원 감축’을 말한 상황에서 정리될 것이 확실시 되는 이 회장 체제의 몇몇 낙하산 임원들도 이미 출근을 않고 있다고 한다. ‘인공위성 헐 값 매각’ 논란까지 겹치며 안팎으로 KT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후임 CEO 선출을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KT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12일 KT 이사회는 긴급 이사회를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이사회는 이석채 회장이 직접 출석해 최근 상황과 사퇴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이석채 KT 회장 (KT 제공)
관심은 이사회가 언제 차기 CEO선임 절차를 밟을 것인가로 쏠린다. KT 정관은 ‘회장 퇴임일 기준 2주일 이내 사외이사 전원(7명)과 사내 이사 1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된 CEO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있다. 이사회가 만약 12일을 사의일로 보고 차기 인선 일정을 시작한다면 ‘CEO 추천위원회’는 오는 26일까지 구성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 차기 회장에 대한 인선은 올 해 안에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KT의 이사들이 모두 이석채 체제의 친정 인물들이란 점이다. CEO 추천위원이 될 이사들은 김응한 미시간대 교수, 이춘호 EBS이사장, 박병원 은행연합회 회장, 성극제 경희대 교수, 차상균 서울대 교수, 송도균 전 SBS 사장 등의 사외 이사들을 기본으로 KT 이석채 회장, 표현명 사장, 김일영 사장 가운데 한 명이 사내 이사로 참여하는 구조이다. 이 회장의 경우 사의를 표해 참여할 수 없고, 김일영 사장 역시 인공위성 매각 논란에 책임이 있단 점에서 표현명 사장의 참석이 유력한데 표 사장은 서유열 사장과 함께 KT내 대표적인 이석채 친정 인맥으로 분류된다. 결국, 이석채의 사람들이 이석채의 후임을 뽑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이석채의 이사들이 이석채의 후임을 뽑는 상황에 대한 전망은 그래서 엇갈린다. 한 쪽에서는 검찰 수사의 강도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밀어내기’ 의도가 있는 상황에서 추천위가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이미 내정된 이를 선택할 것이라고 본다. KT의 한 관계자는 “절차적 행위일 뿐, 지금 상황에서 추천위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며 “이사들이 먼저 권력의 진짜 의중이 누구에게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고 냉소했다. 통신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 역시 “KT 회장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사회가 쿠데타를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여전한 이석채 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단 입장도 있다. 누굴 되게는 못 되더라도 안 되게 할 정도의 힘은 여전히 갖고 있단 시각이다. “복수의 인물이 거론될 경우 이석채 회장이 캐스팅 보드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이에 대해 KT의 한 관계자는 “5년 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며 “남중수 사장 퇴임 이후 애초 유력했던 윤창번을 밀어낸 것은 결국 이사회였다”며 “이번 역시 누가 와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회장이 막후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연합뉴스)
결국, 어떤 인물이냐가 중요하단 얘기인데 이는 KT의 현 지배 구조가 누가 오더라도 ‘낙하산’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련해 차기에 대해선 구체적 인물을 중심으로 몇 개의 ‘시나리오’들이 떠돌고 있다. 우선, 가장 유력한 것은 역시 ‘청와내 낙점설’이다. 청와대가 이미 구체적 인사에게 의사를 타진했단 얘기다. 이 과정에서 애초 논외에 있다가 갑자기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이 급부상하고 있다. 진 전 장관은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의 경기고 2년 선배이고, 정통부장관 시절 하나로텔레콤 사장이었던 윤 수석과 인연이 있다. 진 전 장관이 급부상하며 이석채 회장 이전 KT 사장이 계속 ‘경기고 라인’이었단 점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이상철 경기고 63회, 이용경 56회, 남중수 70회)

그러나 진 전 장관이 급부상 배경에는 이른바 ‘명분 쌓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석채 회장 퇴진으로 KT 낙하산 문제가 사회적 관심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티 나는 낙하산을 내리기가 부담스런 상황에서 ‘참여정부 장관’ 출신의 진 전 장관의 이력은 매우 유용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단 지적이다. 경기고-서울대 출신에 삼성전자 CEO를 역임한 통신업계의 ‘성골’인 진 전 장관을 앞세워 흐트러진 KT 내부를 우선 설득하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언론을 중심으로는 ‘삼성 발탁설’도 나오고 있다. 삼성 출신 인사들 가운데 누군가 중용되리라는 전망이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과 애니콜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이기태 전 부사장 그리고 KT 출신으로 삼성에서 미디어솔류션센터장을 지낸 홍원표 등이 언필칭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KT 내부에서는 “삼성 CEO출신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의 IT쪽 인재풀이 워낙 협소하다보니 할 만한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을 뿐, 현실성은 떨어진단 지적이다. KT의 한 임원은 “삼성 출신 인사들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됐던 이들”이라며 “자칭으로 말하고 다닌단 분도 있던데, 삼성 출신이 CEO로 온다는 것은 KT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 형태근 전 방통위원, 이기태 전 삼정전자 부사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왼쪽부터, 연합뉴스)

이 밖에도 친박계 IT쪽 인사들 가운데 형태근 전 방통위원, 이병기 방통위원 정도가 언론에 의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언론에 먼저 이름이 거론됐던 이들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는 점과 낙하산 논란이 한참인 상황에서 캠프 출신 인사들이 KT를 맡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는 ‘진대제 회장-형태근 부회장’의 투톱 체제를 유력하게 검토 중이란 보도를 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낙하산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은 카드다.

   

by 100명 2013. 11. 6.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