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칼럼]여름휴가 시즌이 끝날 무렵이었던 ‘8말9초’. “KT와 포스코 회장이 바뀌느냐”가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지난 8월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 회동에 재계 서열 6위인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초청받지 못했던 데다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9월7~11일) 동행 경제사절단 명단에도 정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의 이름은 나란히 빠져 있어서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사람들은 시간의 문제라면서 ‘낙마’라는 말을 되뇌었다.

사람들의 되뇌임처럼 일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 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됐고, 급기야 지난 3일 이사회에 대표이사(CEO)와 회장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한 단락이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사람들은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지켜봐온 터다. 5년 전인 2008년 당시 남중수 사장도 사퇴 압력설에 시달리다 결국 뇌물상납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물러났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될까. 역설적으로 지배구조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11년 전인 2002년 한국통신공사에서 민영화된 KT는 단 1%의 정부 지분도 없는 순도 100% 민간기업. 주요 주주는 외국인(43.9%) 국민연금(8.6%) 미래에셋(4.9%) 등이다.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달 21일 KT의 지배구조를 ‘A+’로 평가했다. 포스코 KB금융그룹 등과 함께 최고 점수를 준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지배구조는 정권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계열사만 52곳인 KT는 사장 감사 등 회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가 수백 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청와대가 주인 없는 기업을 논공행상용 ‘전리품’쯤으로 생각한다면 심각한 모럴헤저드다.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KT는 국가 기간 산업을 영위할 뿐더러 융합화시대의 중주역할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정보기술(IT)기업중 하나다. 5년 주기로 크게 흔들리면 그 피해는 국가에 돌아간다. 3만5000여명 KT임직원들은 벌써부터 좌고우면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두 차례 압수수색 이후 줄소환되고 있는 데다 이 회장이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사의 표명과 함께 연내 임원 수를 20% 줄이겠다고 밝히며서 더 뒤숭숭해졌다는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정부는 KT에 대해 주인을 찾아주던지, 아니면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지배구조를 벤치마킹해 새틀을 짜줘야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KT처럼 주인은 없지만 세계 초일류기업이 된 회사들의 공통점은 제 역할하는 이사회와 후계 CEO 양성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대표적이다. ‘경영 그루‘로 꼽히는 잭 웰치 전 회장은 1994년 취임하자 마자 10여명의 내부 후보를 뽑아 6년간 치열하게 경쟁시킨 뒤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제프리 이멜트를 후계자로 정했다. 이런 지배구조가 있었기에 GE가 135년 동안 살아남으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5년마다 CEO가 바뀌는 수난을 겪고 있는 KT엔 지배구조 개편 못지않게 누굴 뽑느냐가 중요한 이슈다. 정권이 침을 흘릴 ‘전리품’보다는 ‘흔들리는 난파선’ 모습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KT는 격전장인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매달 수만명의 가입자를 눈앞에서 뺏기고 있다. 초기 대응이 늦어 경쟁사에 가입자를 뺏긴 탓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KT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시사했다.

KT 차기 CEO는 안팎의 어려움을 추수르는 한편 통신에서 파생된 신사업인 IPTV, 미디어콘텐츠, 미디어랩 부문의 사업성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KT는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이 주도하는 IT생태계에서 한 축을 구성하는 핵심 사업자다. ‘업의 본질’을 꿰뚫고 회사를 퀀텀점프시킬 수있는 인물을 CEO로 선임해야 한다. 포스코 KB금융지주의 임직원과 투자자들도 KT의 변화에 관심이 큰 까닭이다

by 100명 2013. 11. 8. 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