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주의`와 `TLDR`. 무슨 뜻일까. 바로 알아챘다면 웹에 익숙한 젊은 층이거나 모바일 기기로 글을 많이 읽어 본 사람일 것이다. 스압(스크롤 압박) 주의란, 너무 길어서 마우스로 스크롤(좌우 상하 움직이기)을 많이 해야 하는 지루한 글이니 조심하라는 뜻. TLDR(Too long; didn`t read)도 같은 뜻이다.

TLDR는 옥스퍼드 온라인판에 IT신조어로 등재되기도 했다. 짧고 핵심을 짚는 콘텐츠가 먹히고 기존 콘텐츠를 그렇게 바꾸는 큐레이션 기능이 뜰 것이란 의미도 있다. 콘텐츠가 개인화하고 모바일화하면서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더 피로감을 느끼고, 더 외로워질 것이란 비약까지 가능하다. 신조어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느끼는 관계 단절과 소외감을 뜻하는 `포모(FOMOㆍfear of missing out)`가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IT 모바일 시장 변화가 너무 빨라 통신사업자들은 계속 혁신해야 하는 `혁신 피로감` 또는 `혁신의 덫`에서 헤매고 있다. 국내 최대 정보통신사업자인 KT도 예외는 아니다. 갈 길은 먼데 되풀이되는 CEO 리스크까지 가세해 물귀신처럼 KT호 천로역정을 가로막고 있다.

KT 시초는 18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종 황제 21년 왕명으로 우정총국이 개설됐고 병조참판 홍영식이 첫 수장(굳이 오늘날로 치면 KT 회장)이었다.

1990년대 중반 장성 출신인 이준 사장이 맡았을 때 공기업이라 `낙하산 인사`란 지적은 거의 없었다. 인터뷰 때 사장님이란 호칭 대신 `장군님`이란 호칭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2002년 민영화 원년을 선포(당시 이용경 사장)하면서 슬림해지고 경영도 바뀌었다. 하지만 KT는 여전히 공기업처럼, 오히려 일반 공기업보다 더 심하게 `정권 교체-수장 교체-지연ㆍ학연 인사-소외된 임직원들 투서`가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KT 지분 8.65%를 소유했을 뿐인데, 매출 24조원 규모인 재계 11위 그룹이 이처럼 휘둘려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오히려 공기업 시절이 좋았다"는 푸념이 가시지 않는다.

반면 세계 IT기업들은 빠르게 변신 중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미국 스프린트넥스텔을 인수해 세계 최대 통신사로 떠오른 차이나모바일과 겨루고 있다. AT&T와 영국 보다폰 간 합병도 논의되고 있다. 영역 파괴는 아마존(상거래+단말기+칩+콘텐츠), 구그롤라(구글+모토롤라). 마이크로키아(MS+노키아) 등 전방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10여 년간 매출이 정체된 KT 회장 자리에 정치권 개국공신이 아닌,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벤처 기반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ITㆍ모바일ㆍ미디어 전문가가 와야 하는 이유다. 낙하산 출신은 아무리 잘했어도 낙하산 출신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KT라는 트럭이 점화 플러그 8개 중 2개는 고장난 상태라는 한 전문가의 지적도 새롭다. 운전수가 좌석만 가죽으로 번드르르하게 깔고 양복을 입고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작업복 입고 손에 기름 묻히며 고장난 곳을 고쳐야 한다. 새로 오는 회장은 사외이사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지만, 스스로 연봉 `제로`를 선언하고 성과를 내면 받겠다는 결연한 자세까지 요구될 정도다.

새로 영입된 세력인 올레 KT, 기존 세력인 원래 KT 간 대립을 해소하는 일도 해야 한다.

스펙만 화려한 인물이 등장해 `그들만의 혁신`을 추진한다면 화합은 더 멀어진다. 현장과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기가 안 좋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내년 기업 화두 가운데 하나가 `파괴적 창조`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유 사업 영역을 저항 없이 어떻게 잘 허물 것인가.

KT라는 주파수에, 자사 임직원들과 모바일 한국, 그리고 글로벌 IT 생태계에 의미를 던지는 `시그널`은 없고 `노이즈`만 들끓어서야….

by 100명 2013. 11. 11.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