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자 한국일보에는 <KT “일할 맛 나요” 한국판 구글 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직장의 인사, 복지제도 등을 고려해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하는 GWP코리아 평가에서 KT가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선택적으로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워킹’을 구현해 KT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KT식 스마트 워킹은 지난 6월 KBS <다큐멘터리 3일>에 자세히 소개됐다. 광화문 네거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는 유독 KT 노동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광화문보다 대학가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짜내는 KT 신입사원이 눈에 띈다. 이들은 적어도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KT 직원이 됐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는 또 한 부류의 KT 노동자가 등장한다. “매일매일 누가 와서 앉을지 모르는” 곳에서 퇴근시간이 훌쩍 지날 때까지 회사의 업무 관련 프로그램을 보는 50대 노동자다. 이들은 “경쟁에서 자꾸 밀리면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위기감에 하루하루 버티는 중년의 가장이다. 이들은 매일 자기 짐을 보관함에 넣고 빼길 반복한다.

   
▲ KBS <다큐멘터리 3일> 갈무리.
 
이석채 회장은 2011년 말 이사회에 2015년까지 직원을 3만 명으로 유지하면서 1인당 매출을 2011년 6.5억 원에서 삼성전자(11.9억 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제안했다. 그는 탈(脫)통신을 외쳤고, KT를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KT는 혁신과 창의로 똘똘 뭉친 젊은 직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40~50대 노동자들이 내다 파는 회사가 됐다.

<대구건설노조 투쟁기록>(1997년), <노동자다 아니다>(2003년), <외박>(2009년) 등을 연출한 김미례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산다>는 스마트 워킹 시대에 ‘학대’ 당하는 KT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999년 입사한 손일곤씨는 난데없이 전남 고흥에서 일하게 됐는데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연고 없는 지역에 발령이 났다”고 한다.

손일곤씨는 ‘강성’ 조합원이었다. 그는 2001년 2월 조합원 의견을 듣지 않고 회사와 ‘조직개편’을 협상하려는 집행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던 손씨는 이제 “3년 동안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고백한다. 한두 달에 한 번 이상 할 법한 회식에 그는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원거리로 전보조치하고 조직 내에서 소외감을 유발해 퇴사를 유도하는 인력퇴출프로그램(CP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손일곤씨는 주말 서울에 올라와 어린 아들, 딸과 시작을 보낸 뒤 밤 00시 40분 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내려간다. 그는 새벽 4시께 순천 터미널에 내려 고흥행 버스가 출발하는 5시까지 1시간 동안 PC방에서 눈을 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버스에서 일출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산다> 포스터. 자세한 상영일정 등 영화 정보는 온라인 카페(cafe.daum.net/sanda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용모 불량’으로 2년 연속 인사고과에서 F를 받았다는 장교순씨(1986년 입사)는 동화책 읽어주는 키봇을 팔라는 회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1991년에 입사한 서기봉씨는 노화도에 배치됐고, 5년 동안 귀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장씨는 “회사가 일을 거의 안 시킨다”며 또 다른 지역에 귀양 가더라도 KT에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씨는 영업 압박에도 정시 출퇴근을 고집한다.

1989년 입사한 이해관씨(KT새노조 위원장)는 12년 동안 해고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2차 해고되기 직전 이씨가 현장에서 일한 기간은 5년이 채 안 된다. 그는 옛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화를 고치던 ‘한국전력’ 직원을 바라는 동네 주민에게 “이제 KT는 전화로 접수된 일을 처리해야만 실적에 올라간다”고 말한다.

“일할 맛 나는 한국판 구글”이라는 언론의 평가와 달리, KT에는 ‘죽음의 기업’이라는 꼬리말이 붙는다. 올해만 21명의 전·현직 노동자가 사망했고, 이중 8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6월 광양지사에서 일하던 고 김성현씨는 유서에 “15년간 사측(KT)으로부터 노동탄압이 이젠 끝났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상시적 정리해고제’를 찬성한 기표용지에 유서를 남겼다.

KT 언론홍보팀 관계자들과 적지 않은 KT 직원들은 “회사를 흔드는 세력”이 없는 KT를 꿈꾼다. 그런데 앞뒤가 잘못됐다. 민영화 이후 KT 경영진들이 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강제로 내보냈고, 1000명이 넘는 퇴출 대상자를 정하고 학대했다. 자살에 이르게 할 만큼 흔들었다. 학대해고프로그램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사과 한 마디 않고 오히려 이를 ‘합법화’했다.

민주노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KT 직원에게 이 이야기는 ‘냉혹한 현실’일 수도 있고, ‘먼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이들은 당장 몇 년 뒤 성과를 못 내 지역으로 전보조치될 수도 있다. 아니면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조직을 추가로 외주화해야 한다는 회사 정책에 자신은 대상자가 아니라서 찬성표를 던질 수도 있다.

언론은 여전히 “KT는 일할 맛 나는 한국판 구글”이라고 칭송할 건가, 아니면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노동자들에게 “네가 뿌린 대로 걷은 거야, 네 팔자야”라고 할 건가. 이런 언론, 이런 기자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KT를 일할 맛 나는 직장으로 만드려는 사람들이 정년을 앞두고 있다. 언론은 여기 주목해야 한다.

   
한국일보 11월 9일자 11면

by 100명 2013. 11. 13. 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