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석채 회장의 사퇴를 놓고 말들이 많다. 이미 민영화된 기업에 아직도 정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니, 물론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전 만난 어느 선배는 “박근혜 정부는 안그럴 줄 알았는데……”하면서 아쉬워했다. 역시 나도 아쉽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는 CEO를 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KT는 예외다. 포스코도 그렇다. ‘민영화된 기업은 완전히 민간의 손에 맡기어야 한다’ - 이런 바른생활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이 두 사례에는 통하지 않는다. 

현재 KT와 포스코 회장의 공통점은 이렇다. 둘 다 ‘뼛속까지’ MB맨이라는 점이다. 물론 MB맨이라고, 그래서 이제는 GH맨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심각한 공통점은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경영상태만 좋다면 천년만년 그 자리에 있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멀쩡한 알짜배기 회사를 본인의 사기업인양 접수하여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통하여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뜨려 놓은 점 - 이석채 회장과 정준양 회장은 신통방통하게도 이런 점이 빼닮았다.

KT의 경우, 많은 사람이 벌써 이 사실을 잊고 있는데, 이석채 씨는 회사의 정관을 고쳐가면서까지 회장이 되었다. KT 정관에 따르면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 및 그와 동일한 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임직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임직원이었던 자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고, 이사가 되더라도 그 직을 상실케”되어 있다. 이석채 씨는 KT의 경쟁회사인 LG전자와 SK C&C의 사외이사로 급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을 KT 사장으로 만들기 위해 정관까지 고치고 부득부득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의 전형이다.

정준양 씨 역시 멀쩡하게 회장직을 맡고 있던 이구택 씨를 밀어내고 포스코건설 사장에서 느닷없이 포스코 회장이 되었는데, 그가 선임되는 과정에는 MB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MB정부 초기 ‘왕차장’으로 불리었던 박영준 씨(나중에서는 ‘왕차관’이 되었고, 현재는 원전 비리 혐의로 재판중이다)가 직접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준양 씨의 죄(?)는 이석채 씨보다 훨씬 크다. 현재 이석채 씨가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실은 정준양 씨가 맞을 매를 엉뚱하게 이석채 씨가 맞고 있다. 이석채 씨는 취임후 곧바로 자회사인 KTF를 합병하고, 2010년에는 금호렌터카를 인수하고, 2011년부터 BC카드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해 2013년에 완전히 자회사로 만들었다. 이석채 회장 취임당시 30개 정도이던 KT의 계열사는 현재 50개로 늘어났다. 재벌들도 이런 식으로 과격하게 계열사를 확장하지 않는다. 정준양 회장은 한 술, 아니 두 술 더 뜬다. 정 회장 취임 당시 30개 정도였던 포스코 계열사는 단 2년 만에 자그마치 70개로 늘어났다가, 그나마 올해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해 줄인다고 줄인 것이 50여 개에 이른다.

KT의 확장은 그나마 이해가 되는 대목이 있다. 금호렌터카를 인수하고, BC카드까지 인수해 KT가 애초에 갖고 있던 강력한 통신망과 전국적인 조직망에 렌터카 사업과 신용카드 사업을 연결함으로써 나름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는 평가다. 그런데 포스코는 뭔가? 도대체 포스코가 광고대행업이나 보험중개업 같은 사업에 뛰어들 이유가 뭔가?

주가가 많은 것을 대변해 준다. 이석채 회장 취임 당시 4만 원대 초반이었던 주가는 한때 2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가까스로 3만 원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60만 원대까지 치솟았던 포스코의 주가는 정준양 회장의 문어발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현재는 30만 원대로 곤두박질 쳤다. 포스코의 경우 자산이 2배 늘어나는 사이 부채는 4배가 늘어났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반의 반토막이 났다. ‘국민의 기업’을 완전히 말아먹은 것이다.

자, 이래놓고도 KT와 포스코 회장을 바꾸려는 시도가 그저 ‘권력의 입김’인가? 제대로 된 회사였으면 쫓겨났어도 몇 번 쫓겨났을 회장이 정권의 낙하산 병사가 되어 수년간 자리를 지켰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후안무치 ‘빼째라’ 정신으로 버티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민영화된 기업에 정권의 개입은 그만”이라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언론계 인맥을 총동원하여 로비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하니, 자기는 뒷문으로 들어온 주제에 뒷문을 막아서고는 ‘뒷문은 나쁘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다. 여성 대통령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지가 뭘 어쩌겠어”라며 말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미 민영화된 기업의 CEO가 정권의 교체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이석채-정준양이 교체되고 그 다음 CEO부터 적용될 원칙이다. 현실성 없는 원칙을 내세워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일이 아니다

by 100명 2013. 11. 14. 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