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사퇴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했던 두 회장이 국빈 만찬 초청대상에서 제외되면서부터다. 이어 8월 말 박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 회동, 곧 이어진 9월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동행 경제사절단 명단에 두 회장이 연거푸 빠지자 사퇴설은 급속히 확산됐다. 눈치 빠른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이 청와대의 의중을 알아채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이때를 전후해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2개월. 아니나 다를까, 이 회장은 지난 12일 공식적으로 사퇴했고 정 회장 역시 내년 3월 주총 전 사퇴가 기정사실화됐다. 새 정부 출범 후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그토록 강조하기에 ‘혹시나’했지만, 역시 정권 교체기마다 겪었던 포스코와 KT 최고경영자(CEO) 잔혹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포스코와 KT는 각각 지난 2000년, 2002년 민영화돼 지금은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지만 이들 두 회사 CEO 자리에 대한 역대 정권의 집착은 끔찍할 정도로 집요했다. 민영화 뒤 ‘정치외풍’을 견뎌내고 온전히 임기를 마친 CEO가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다. 5년 주기로 찾아오는 포스코와 KT의 ‘CEO 리스크’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가 된 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다보니 “이럴 바에는 아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회장을 다시 뽑는 것으로 정관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볼멘소리가 두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두 회장을 개인적으로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두 회장 역시 전임 정권에서 정치적 영향력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5년 주기로 포스코와 KT를 흔들어대는 게 단순히 이들 회사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스코와 KT는 재계 6위와 11위의 거대 기업이다. 산업의 쌀을 공급하는 포스코가 정권 교체 때마다 기우뚱거린다면 포스코의 문제를 넘어 한국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을 흔드는 일이다. ‘정보기술(IT) 코리아’의 위상을 굳건히 해야 할 KT CEO 자리가 새 정부 출범후 논공행상용 ‘전리품’쯤으로 여겨지며 흥정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비극이자 수치다.

이석채 회장의 사표를 수리한 KT 이사회가 내주 초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회장 후보 추천 등 후속절차에 들어가기로 함에 따라 과연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지 시장은 주시하고 있다. 차기 포스코 회장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들 회사에 가장 필요한 건 경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정부의 입김을 배제하고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를 내부적으로 선임할 수 있는 토양과 전통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두 회사 후임 회장 자리를 놓고 시중에는 정권 실세 간 파워게임설이 파다하다. 3인의 핵심 실세가 저마다 자신과 친분 있는 인사를 밀고 있어, 이번 선임 결과를 보면 누가 명실상부한 실세인지 판가름이 날 것이란 얘기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젠 포스코와 KT를 놓아줘야 한다. 무리한 욕심을 내다보면 5년 뒤 차기 정권에 의해 똑같은 되갚음을 당할 수 있다.

by 100명 2013. 11. 15. 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