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무효 다툼 과정 ‘불법’ 활용
당사자 동의 없이 증거로 제출
해고 직원이 고소하자 “단순 실수”

케이티(KT)가 불법적으로 해고 직원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위치 정보를 입수해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케이티가 직원들의 통화 내역 등을 감시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이런 행위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20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올해 2월 케이티에서 해고된 이아무개(53)씨는 케이티가 자신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동의 없이 입수해 사용했다며 통신비밀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12일 이석채 전 케이티 회장과 케이티 윤리경영실 직원 3명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이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케이티는 지난달 28일 해고 무효 여부를 놓고 이뤄진 중앙노동위원회 심문에서 이씨가 케이티 직원들과 휴대전화로 통화한 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케이티 쪽이 낸 ‘통신사실 확인자료’에는 이씨가 전화를 건 시각과 통화시간, 전화를 사용한 지역의 기지국 정보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당시 이씨는 12차례에 걸쳐 회사 직원과 통화한 것으로 나온다.

지난해 10월 케이티는 “이씨가 2001~2003년 부인 명의의 건물을 케이티에프(KTF) 기지국으로 임대해주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감사를 벌인 뒤 이씨를 해고했다. 해고 무효를 다투던 중 케이티는 “이씨가 실질적인 건물 관리자였고,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보증금 반납도 지연하고 있다”며 이를 증명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로 불법 입수한 이씨의 통화 내역을 중앙노동위에 제출한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개인 통화 내역을 동의 없이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형사소송법 등의 규정(범죄 사실이 있을 때)에 의하지 않고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통신사에 통화내역을 요청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범죄 사실이 인정되거나 법원의 영장을 받은 경우에 가능하다. 전기통신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재직중 알게 된 타인의 통신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정률의 정관영 변호사는 “퇴직한 직원의 사적인 통화내역을 열람했다면 법 위반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문제”라고 말했다.

내부 규정도 어겼다. 케이티의 통화내역 열람 규정을 보면, 가입자만이 자신의 통화내역을 살펴볼 수 있다. 발신자 본인이 요구하는 경우에도 수신자의 위치정보 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동안 케이티 안에서는 강도 높은 직원 퇴출 프로그램과 맞물려 사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케이티 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퇴출 대상자의 생활 습관까지 회사가 관리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 사찰 정황이 확인된 적도 있다. 케이티 직원 한아무개(53)씨는 케이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회사로부터 가족 현황, 경제 상황을 비롯해 취미와 사생활을 감시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지난 4월 이를 일부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케이티가 경영 진단 명목으로 자회사인 비씨(BC)카드 직원들의 주민번호와 병원 치료 내역 등 각종 신상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나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해고 직원의 통화 내역을 불법 확인한 사실까지 알려지자 케이티가 직원들의 개인 휴대전화와 사내 메신저 등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지난해까지 케이티에 다닌 박아무개(54)씨는 “회사 감사실 등에서는 요주의 직원들의 통화 내역뿐 아니라 사내 메신저 등까지 확인하고 있다는 소문이 지속적으로 떠돌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케이티 관계자는 “증거 자료를 찾기 위해 (이씨와 통화한) 직원이 (자신들의) 통화 내역을 뽑으면서 착오로 이씨의 통화 내역까지 포함해 제출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많은 자료를 다루면서 생긴 실무진의 단순 실수에서 비롯한 것으로,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사찰이나 통화 기록 확인 등이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by 100명 2013. 11. 21.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