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위, 객관적 선발방법·과정 거쳐야
각종 규제권 가진 정부 의지도 중요

'주변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부덕으로 회사가 창사 이래 최대 혼란을 겪고 임직원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드렸기에 떠나고자 합니다'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임직원들의 고통을 보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에,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떠납니다'

 

이 두 가지 글의 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각기 쓴 사람과 시점은 다르다. 첫 번째 글은 남중수 전 KT 사장이 2008년 11월 검찰 구속 직전 이임사로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이고, 두 번째 글은 검찰 조사를 받던 이석채 전 KT 회장이 이번 달 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이다. KT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KT의 최고경영자(CEO)는 왜 그리 잘못이 많으냐는 물음도 던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권에 따라 수장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왜 KT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지난 12일 이사회에 사의를 밝힌 뒤 서초사옥을 떠나고 있다.

◇CEO추천위의 과제

 

KT는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CEO 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CEO 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7인 전원과 사내이사 1인 등 총 8명으로 구성됐다. CEO 추천위는 앞으로 KT의 경영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해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CEO 추천위의 활동내역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우선 후보 선정과정에서 공모를 거칠지 여부가 관건이다.

 

공모의 경우 다양한 후보군을 놓고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CEO 인사를 놓고 낙하산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독후보 추천을 했을 경우의 밀실결정 비판을 피할수도 있다.

 

다만 공모를 거친다고 해서 외압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CEO 선발기준이 공개되지 않을 뿐더러 평가도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CEO 추천위원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평가방법과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직원들도 ‘네 편, 내 편’으로 갈려 골이 깊은 만큼 혁신적 인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방송뿐만 아니라 금융·부동산 등 KT그룹의 각종 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지의 자질 평가는 기본이다. 또 CEO 후보자를 선발할 때 KT의 지배구조 취약점을 재임기간 내 개선시킬 수 있는지 여부도 봐야 한다. 이는 CEO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CEO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CEO추천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는 KT서초사옥 모습

 

◇정부의지가 더욱 중요

 

KT의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석채 전 회장이 지배구조위원회를 만들어 개선방안을 도출했지만 결국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이유에도 정부 눈치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KT를 바라보는 정권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한국 통신·방송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KT를 흔들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KT는 지난 5년간 두 차례의 CEO 위기 과정을 거치면서 큰 손해를 봤다. 몇 달간의 경영공백은 물론 KT 내부적으로도 쉽게 바뀌는 CEO에 따라 파벌이 형성되는 폐단이 생겼다. 이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희석시켜 경쟁력을 잃게 만든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행사하는 규제권을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규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국가자산, 필수설비에 따른 최소한의 사전규제 권한만 행사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설명이다.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은 정부 눈치를 보게 되고, 폐단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다.

 

전직 KT 한 임원은 "일각에선 차라리 KT CEO의 임기를 정권의 임기와 같게 바꾸는 것이 좋다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면서 "정부에서도 KT나 포스코 등 공기업적 성격을 갖는 민영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11. 22.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