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KT CEO 선임의 으뜸 원칙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탄식했다. “마치 큰 병이 든 사람이 진원(眞元)이 허약하여 혈맥이 막혀 버리고 혹이 불거지게 된 것과 같은 꼴이다.”(정조실록, 2년 6월4일)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응급환자였다. 응급 상황에는 일상적인 처방보다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당장 당쟁만 일삼던 `언론 삼사`부터 혁파했다. 탕약 쓰던 관행을 버리고 환부에 과감하게 메스를 댔다. 정조의 개혁 드라이브는 혈맥이 막혀 다 죽어가던 조선을 500년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로 바꿔놓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바로 리더십에서 나왔다.

KT 새 CEO 공모가 시작되면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정치권, 관료, 기업인 출신 등 줄잡아 10여명의 인사가 물망에 올랐다. CEO 공모가 역대 최대 경쟁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벌써 여기저기서 정치권에 줄을 댔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걸까. 분명 지금의 KT는 혈맥이 막힌 중환자인데도 말이다. 고생을 사서 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석채 전 회장이 그 자리를 너무 매력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일까. 혹시 그런 이유라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사심 가득한 사람들이 지금의 KT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KT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실적은 뒷걸음이고 조직은 모래성과 같다. 세 차례에 걸친 검찰 압수수색으로 직원들 사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자괴감과 무력감으로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 마치 어둑한 뒷방에 누운 말기 암환자 같다. 그래서 지금 KT에 필요한 사람은 허준이나 화타와 같은 전설적인 명의다. 잿밥에 관심 있는 돌팔이에게 맡겨 놓으면 결과는 뻔하다.

그러면 KT를 살릴 명의의 조건은 무엇일까.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나 이래저래 KT CEO 인선에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정답은 간단하다. 얼마 전 KT와 비슷한 처지의 캐나다 국민기업 블랙베리의 새 CEO 선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블랙베리는 전 사이베이스 대표 출신 존 첸을 CEO로 발탁했다. 파산 직전의 사이베이스를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성공 DNA`를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검증된 선수에 거액을 베팅한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두둑한 배짱으로 10승 고지에 오른 저력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라는 큰 무대에 뛰어본 덕이 컸다. 경험이 있고 없고는 천양지차다.

KT CEO 선임을 두고 이런 저런 조건이 제시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혈맥이 막힌 KT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다. KT를 살릴 능력이 먼저고, 검증된 `성공DNA`가 있어야 한다. 당장 기죽은 KT 직원들이 이름만 들어도 기운이 나는 `성공 바이러스`를 가진 인물이면 금상첨화다.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을 잠재우는 정공법도 여기에 있다.

국민기업 KT가 살아나야 한국경제의 생태계 한축도 기지개를 켤 수 있다. 캐나다가 국민기업 블랙베리에 `특급 소방수`를 투입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검증된 베테랑이어야 국민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by 100명 2013. 11. 26. 08:03